| 예레미야 애가 3:22-33

예레미야는 비운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40년 동안 쉬지 않고 자기 민족과 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하고자 
노력했지만 그 결과는 멸망이었습니다. 그는 슬픈 노래, "어찌할거나!"(에카)를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까지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야 합니다.

똑 같은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인품과 가치, 그리고 그의 장래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문제 앞에서 낙심할 수 있고, 자포자기할 수도 있으며, 당당하게 맞설 수도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다는 
전쟁의 참화를 차마 바라볼 수 없게 되었지만, 예레미야는  이런 현실 가운데서도 낙망하지도, 자포자기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히 여전히 남아 있음을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나라는 망했지만 완전히 망한 게 아니고, 오히려 아침마다 더욱 새로운 희망을 느낄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가 무엇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스위스 철학자 아미엘은, 마음이 변하면 태도가 변하고, 태도가 변하면 습관이, 습관이 변하면 
인격이, 인격이 변하면 인생이 변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마음이 변하면 인생이 변합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워지고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우리들 삶입니다. 고난 그 자체만 생각한다면 
슬프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 고난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가난의 뜻을 깨달은 한 젊은이는 부모와 가족을 더욱 사랑하게 됐고, 공부에 더욱 정진해서 
서울대 음악대 성악과에 수석이 되었습니다.


고난은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뜻 모를 고난이나, 의로운 고난이라면 그래도 견딜 만 하지만, 당연히 받아 마땅한 고난 앞에서 무엇인가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권하는 경우는 분명 후자입니다. 
잘한 것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혼 줄이 나도록 매를 맞아 마땅한 잘못을 뻔히 저지른 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래도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면서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권합니다. 어려운 일 
앞에서 서두르다가 더 그르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고난 앞에서 기다림의 가치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줍니다. 이런 하나님께 대해서 우리들의 성실치 못한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기다림은 새로운 기회와 소망을 꿈꾸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다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손길에 
맡기는 믿음이 자라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은총만을 바라는 가장 지혜로운 시간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시간의 의미만이 아니라, 성품을 조절하는 훈련도 가능케 합니다. 고난의 시간은 기다림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총을 헤아려보며, 우리 자신들의 어리석고 연약한 모습을 대조해 보는 
새로운 기회입니다. 잠잠히 주님을 기다리라.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발견하는 기회입니다.

모두가 즐겨하지 않는 고난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난은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육체적인  고난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활에 고난이 없다고 한다면 또 어떤 일이 생길까요? 
거의 틀림없이 자만과 오만에 빠져서 거들먹거리다가 어리석은 길로 내달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고난이 있기 때문에, 겸손해 지고, 남을 배려하게 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사랑하는 일과 
섬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삶의 내용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고난이 닥쳐왔다고 해서 너무 절망하거나 
슬퍼할 까닭이 없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고난보다 더 확실하게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선지자는 바로 이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시련과 고통 속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로 고난의 멍에를 짊어지게 하셨고, 뺨을 맞는 
수치도 맛보게 하셨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영원토록 그런 고통  가운데 머물게는 하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고 합니다(27-31절).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건강도, 자존심도, 명예도 잃었다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고난을 통해서 이것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회복하게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고난은 고난만이 아닙니다. 고난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재정비하는 기회입니다. 자신과의, 이웃과의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은총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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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20일 박성완 목사님의 주일예배 설교문입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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