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411(2018. 12. 5. 수요일).

시편 119:49-52.

찬송 24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연말이 가까워오면서 마음 가는 공연들이 참 많습니다. 이 공연을 볼까 저 공연을 볼까, 공연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고 공연장 좌석을 골라보지만, 남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접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한 기회가 그것도 두 번이나 생겼습니다. 한 번은 회사에서 마련한 행사였는데요. 같은 부서 사람들이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공연장으로 가서 일에 대한 부담이 적었습니다. 그런데다 한국과 일본 미국 출신 멤버로 짜인 슈퍼 밴드의 공연이어서, 콩콩 울리는 드럼과 퍼커션 리듬에 맞춰,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에는 출근길에 친구의 전화를 받았는데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그날 저녁 음악회에 함께 가자는 연락이었습니다. 회사 일이 좀 부담이 됐지만, 볼까 말까 망설이던 공연이었던 데다가, 친구 본지도 오래된 터여서, 그래 좋다 하고 마음을 정했지요. 점심시간 좀 줄이고 쉬는 시간 없이 일을 처리하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렇게 몰아치듯 일을 마치고 친구와 약속한 공연장으로 가다보니, 어제 슈퍼 밴드가 공연한 곳과 같은 공연장이었습니다. 화려한 불빛이 오가던 무대 위는 은은한 조명이 비추고 있고, 비어 있던 무대 위로 검은 연주 복을 입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차례로 등장하더니,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요. 저 무대가 어제 그 무대와 정말 같은가 싶었습니다. 잠시 후 남자는 매일 달라지는 그 무대 위 풍경들을 상상해 보게 됐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우리 마음도 저 무대 같은 게 아닐까? 때로는 시끄럽고 복잡한 일들이, 때로는 따뜻하고 잔잔한 일들이 펼쳐지고, 가끔은 텅 비어 있을 때도 있지만, 어느 새 또 다른 감정들이 채워지는 마음의 무대. 그렇다면 마음의 무대 위를 오가는 크고 작은 감정들의 변화들에도, 조금은 초연해질 수 있겠다 생각해 보는 보통의 아침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81129일 방송>

 

2. “데살로니가로 다시 가려는 바울(17-20)”을 읽었습니다. 본문을 읽노라면 무슨 연애편지를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됩니다. “몸으로만 떨어져 있을 뿐, 마음으로는 떨어져 있지 않다.”는 구절이나, 사도 일행이 두 번이나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사단이 길을 막았다는 구절은, 흔한 연애 편지의 단골 구절인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구절들은 연애 편지를 흉내내는 요즘 말로 연애 편지 코스프레가 아니라, 진정성이 담긴 마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 곧 재림 때 주님 앞에서 누릴 희망과 기쁨 그리고 자랑할 승리의 면류관을 놓고서 이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자신의 영광이고 기쁨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저는 보통 사람에 비해서는 편지를 많이 썼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아내에게도 무려 10년 가까이 편지를 썼는데 거의 매 주에 한 두 번 꼴로 썼고, 그 밖에도 다른 사람을 대신한 편지들도 참 많이 썼습니다. 논산 훈련소에서는 구대장이 짝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쓰다가, 결국 탈영병을 위해서도 대필을 해 주었는데, 그 편지가 그 병사를 감옥에서 구해내는 기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별명 문학가는 기갑학교에 와서도 계속되었고, 불미스러운일로 군 영창에 갇힌 교회청년을 위한 탄원서도, 재판장에게 보낸 탄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합니다. 돌이켜보면 대필을 한다는 것은 많이 힘들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앓고 있는 아픔에 참여하는 기회가 되었지 싶습니다. 고후 10:10은 바울이 글에서는 무겁고 힘이 느껴지나 말은 시원치 않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글에 비해서 말은 어눌했던 것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바울이 말을 잘했더라면 글로 남길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의 위대한 신학 사상이 주옥같은 글로 남겨져 우리에게까지 읽혀지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해 봅니다.

 

3. 어제 새벽 미국 41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의 장례식을 시청하였습니다. 정적인 클린턴을 다른 어머니가 낳은 형제라 불렀고, 다운 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존스 크로닌의 양말을 팔아주었으며, 고르바초프와 함께 냉전 시대를 마감했던 진정한 평화의 일꾼이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미국민과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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