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1715(2006.1.26. 목요일).

시편 98:1-3.

찬송 51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본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올 한 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여성 작가이지요. 우리나라에도 독자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 에꾸니 가오리가 작가가 되기 전, 도쿄의 한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무렵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한 번은 이 에꾸니 가오리가 팩스 보내는 심부름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팩스 한 장 보내러 나간 사람이 오랜 시간을 지나도 안 돌아 옵니다. 그러자 사무실 사람이 찾아 나섰지요. 그랬더니 에꾸니가 팩시밀리 앞에서 쩔쩔매서 서 잇더라는 겁니다. “아무리 전송 단추를 눌러도 가지 않고 저 쪽으로 가지 않고 그래도 여기 남아 있어요.” 라고 하면서요. 덕분에 서류를 기다리던 쪽에서는 끝없이 들어오는 서류를 산더미처럼 받아야 했다고 하지요.

   남 얘기 같지가 않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요.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인데 몰라서 실수 하는 일들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다보니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일이라던가, 잘할 수 있었는데 웬일인지 그릇치고 마는 일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실수들에 너무 크게 사로잡힐게 없음을, 이 에꾸니 가오리가 증명해 줍니다. 팩시밀리 같은 간단한 기계를 쓰는 일에는 무지했지만, 글을 쓰는 일에는 충분한 재능이 있음을 보여주는 작가, 그처럼 내게도, 이번에 잘못했거나 부족했거나 그르친 일과는 다른, 정말 잘 할 수 있는 나의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항상 곁에 세워두는 일,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KBS FM 1, 이규원의 가정음악, 20051226일 방송>

 

2. 한번 머리에 들어와 박힌 생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현상을 고정관념이라고 합니다. 이 고정관념은 때론 너무 강하고 너무 뚜렷해서 다른 생각들보다 훨씬 잘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고정관념이 잘못된 것일 경우, 이 보다 더 큰 낭패는 없을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오히려 참 된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힘써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랬다고 생각 들기 때문입니다. 구약을 율법으로, 신약을 복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구약을 약속으로 신약을 성취로 보는 것 또한 지나친 강조입니다. 이런 구분은 편의상 그렇게 하는 것일 뿐, 사실은 구약에도 복음이 있고, 신약에도 율법이 많습니다. 그런데 편의상 아니면 강조하다가 보니까 어느 새 붙박이장처럼 요지부동하는 관념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결과는 저처럼 소갈머리 없는 모자란 선생들의 책임이 작지 아니함을 고백치 않을 수 없습니다. 철부지 학생들에게 좀 더 생각의 방을 넓혀주기 보다는 고정관념들로 가득 채우도록 강요했던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집불통인 지식인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던 셈입니다. 유대인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여유 없는 마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유대인의 제사와 새롭게 나타난 예수님 자신이 제물이 된 제사에서, 유대인들은 다른 아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낯선 제물을 거부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미 구약에서 레위기에서 제정한 제사제도와 함께 예수님의 제물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고(5/40:6-8),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유일한 분임도 약속된 것이었습니다(6-7/40:7).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런 구절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주목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율법들과 전통들 그리고 성별의식이 온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서, 다른 어떤 생각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인지 모릅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는 존경하면서도, 그들이 가르치는 예수님은 거부하는 비극을 연출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우리의 눈을 예수님을 향하도록 목청을 높일 것입니다. 그러나 종내 유대인들은 듣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들의 마음에 꽉 차 들어 박혀 있는 고정관념들을 비우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3. 어제는 홍천에 있는 비발디 파크에 다녀왔습니다. 처음으로 스키장을 구경한 것입니다. 년 전에 인스부르크의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는 곳을 먼발치에서 본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설원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딴 세상 사람으로 살아왔음과, 우리 학생들이 이런 삶을 동경하게 될까봐 걱정이 된 것은 또 다른 고정관념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나님께 더 가까이>를 제목으로 내건 수련회 마지막 설교를,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라고 힘주어 전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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