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2499(2008. 3. 20. 성목요일/Maundy Thursday).

시편 시 35:22-28.

찬송 28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작가나 유명한 사람들의 책이나 자료를 보면, 대부분 그 사람의 일생을 압축해 놓은 연보가 실려 있곤 하지요. 그런 연보를 통해서 사람의 인생을 살펴보노라면, 삶이란 게 얼핏 참 단순 명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언제 태어났고,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 이런 일반적인 사실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한 줄 정도 아주 단편적으로 처리되지요. 드디어 본격적인 저술활동, 수상 경력들에 초점이 맞추어져도, 몇 줄 더 추가되는 것에서 한 페이지쯤 길면 두 페이지정도 그 사람의 인생이 정리되곤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생애라는 게, 이렇게 건조하고도 납작하게 눌려서 정리될 수도 있구나, 좀 허무한 느낌마저도 가질 수 있는데요. 하지만 그런 압축파일 같은 연보를 좀 더 다른 관점에서 풀어 본다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최근 읽은 레이몬드 카버라는 미국 작가의 연보를 보면, “196426세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트 머시 병원의 수위로 일하다.” 이 한 줄의 설명 뒤에 여백이 이어지다가 3년 뒤로 넘어갑니다. “196729, 봄에 파산신청을 하다.”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그 생략되어 버린 3년이 참 중요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커버는 미국 소시민들의 일상을 짧은 문장으로 삽화를 그리듯 묘사하고 있는 작가인데요. “비타민을 판매하는 아내의 이야기, “실직 한 뒤 습관적으로 술만 마시는 남자”, “집 주인에게 그만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은 사람들”. 그러한 이야기가 생생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아무래도 저 3년 동안의 자신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지요. 연보 속에서는 그 3년이 그냥 빈 공간으로 생략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단 하루를 건너 뛸 수가 없는 것이니, 3년이라는 시간이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긴 터널의 시기였을 수도 있겠다, 여겨집니다.

   젊은 날에 수위 일자리라도 해보려고 했다가, 파산 신청에 이르는 그 3년 동안, 카버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깨달을 수도 있었겠구나, 생각되는 거지요. 그는 그런 위기의 시간을 건넌 뒤에, 또 다른 시간에 대한 보고서들을 더욱 본격적으로 써나갔고, 결국 중요한 현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장애물, 또 위기나 터널의 시기라는 것이 존재할 텐데요. 통과 방법이나 통과의 자세, 통과의 속도에 따라, 남은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살아가는 일은 장애물 경기를 닮아 있기도 하구나, 생각해 봅니다.

<KBS FM 1, FM가정음악, 200837일 방송>

 

2. 예수님의 공생애 3년 중에서 가장 마지막 해의 유월절 만찬 자리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장소는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아무개의 집이었다고 복음서가 말씀합니다(26:18). 적어도 예루살렘 성 안에는 예수님과 그 제자 일행들이 유월절 만찬을 가질만한 조금은 큰 집이 있었던 것입니다. 니고데모의 집이었는지, 아니면 새 무덤을 헌사 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름도 없이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 부었던 사람 정도로 이해합시다.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만찬>이라는 그림을 보면 이탈리아의 일반적 상차림이겠습니다만, 거기에는 한 마리의 양을 잡은 고기 접시들과, 그리고 그 해 빚은 포도주와 빵 들이 잘 차려져 있었습니다. 촛불은 유월절 만찬에 참석한 예수님의 일행을 따뜻한 빛깔로 비춰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큰 빵 한 덩어리를 들어 올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 그 빵의 한 가운데를 뚝 자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라.”(26:26) 그리고는 거기에서 한 조각씩 제자들에게 일일이 건네주십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이번에는 포도주 병을 드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받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언약의 피니라.”(26:27-28). 제자들은 그 한 덩어리 빵에서 조금씩 떼어 먹었고, 같은 한 포도주 병에서 포도주를 나누어 마십니다. 바로 이 장면은 사도는 지금 연상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찬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양이 되셨다는 역사적인 진리와 함께, 오늘 우리들에게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할 사람들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떡을 먹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피를 마신다는 의미 말입니다. 물론 초대 교회 이래로 이 말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다 함은, 그분의 생명을 취한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지요. 순교자 저스틴의 [변증서 1]에 의하면, 말씀의 예배가 끝난 후에 문을 잠그고 세례 교인들만 따로 모여서 떡과 잔을 나누면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는 말을 문자대로 이해한 사람들이 많았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찬은 우리 주님이 세상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영원한 표상이면서, 동시에 이 성찬 안에서 인종과 언어와 문화, 성별을 초월해서,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3. 여수 돌산읍 제일교회가 나뉜지 15년만에 다시 하나가 되었답니다. 또 다른 기적입니다. 묵상식구이신 류요한 목사님께 축하와 수고하심에 위로를 드립니다. 오늘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성만찬 제정을 기념하는 성만찬과 세족식을 거행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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