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253(2013. 1. 7. 월요일).

시편 시 63:8-11.

찬송 44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라는 잠언서로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이자 화가이지요. [예언자]는 처음 발간 됐던 1923년부터 9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예언자]를 낳은 칼릴 지브란의 생애는 사실 불행했습니다. 그는 1883년 레바논 북부의 작은 마을 베르샤에서 태어났습니다. 만약 그곳에서 계속 자라고 그곳에서만 글을 썼다면, [예언자]가 그토록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러니 레바논을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불행이, 오히려 작가로써의 그의 생애를 도왔다고 할까요? 그의 나이 12살 때 지브란의 아버지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세무 관리 일을 하다 업무상 실수를 한 것이었지요. 지브란 가족은 결국 재산까지 몰수당한 채 레바논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지브란은 미국에서도 늘 레바논의 고향 마을을 그리워했습니다. 15살 때는 혼자 고국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아랍 문학을 공부했지요.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던 중누이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습니다. 얼마 안가 형과 어머니의 죽음이 연이어졌지요. 그 때부터 칼릴 지브란은 글과 그림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40세 때, [예언자]를 펴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예언자]에는 사랑에서부터 어린아이 기쁨과 슬픔주는 것 선과 악 등, 인간사에 관한 거의 모든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더 없이 쉬운 말들로 돼 있어서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그중 일에 대해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들에게 말하노니그대들은 일함으로써 이 땅에 머나먼 꿈의 한 조각을 이룰 것입니다. 그 꿈은 태초에 태어날 때부터 그대들에게 주어진 몫이었으니, 그대들이 쉬지 않고 일할 때진정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일을 통해 삶을 사랑하는 길은 삶의 깊숙한 비밀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1015일 방송>a.

 

2. 어제는 신대원생인 전도사님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신앙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옆에는 평신도 젊은이들도 몇이 끼어 있었습니다. 화제 중의 하나가 주초문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묵상 본문이 우리 주님의 최초의 표적이 가나의 혼인집에서 포도주를 만들어 주는 내용입니다. 문자 그대로 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다운 능력을 술 만드는 일에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기엔 의미심장한 뭔가를 기대할 것 같은 데, 슬프게도 "기독교인=술 담배 안 하는 사람"이라는 등식에서 멈춰 버린 듯한 우리 현실이 돼 버린 듯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충분히 각오를 하고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주초문제는 건덕에 관한 문제일 뿐 선악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예로 한국 개신교회를 제외한 세계 기독교회는 주초를 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만은 주초 문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졌고, 마침내 "기독교인=주초 안 하는 사람" 이라는 등식이 불문율로 수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기독교의 진리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기독교인들은 주초 안하는 사람쯤은 상식처럼 되고 만 것입니다. 포도주는 유대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료였고, 맥주는 독일인들에게는 매우 보편적인 음료입니다. 물론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모두에게 같은 인식입니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이런 기호식품이 기독교인임을 규정하는 기준처럼 되었으니,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간략하게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주님께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이야기는 움직일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보다 큰 틀에서 그리고 긍정적인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이 본문의 참된 의미는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곤경을 외면치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셋째 한국 개신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나, 이를 지나치게 두둔한 나머지 "기독교인=주초 안하는 사람" 등식은 오해라는 점입니다. 이는 개신교 초기 한국의 사회 문제를 풀려는 청교도 선교사들의 처방에 불과했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두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본질적인 것이 본질적인 것을 집어 삼킨 우를 더 이상 감추지 말자는 것입니다.

 

3. 오늘과 내일은 신갈 루터대학교에서 열리는 한 웍샵에 참가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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