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15(2019. 6. 27. 목요일).

시편 19:5-6.

찬송 50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그녀는 일행 두 사람과 함께 한 출판사 대표와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개인 출판사를 낸지 2년쯤 된 젊은 출판사 대표였는데, 출판에 대해서 엄청난 의욕과 열정을 갖고 있었지요. 그는 자신의 출판사에서 낸 책을 한 권씩 모두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고마운 마음으로 책을 이리저리 훑어 봤지요. 그러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있기래, 나중에 읽어볼 생각으로 그 페이지 끝을 접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대화중이었던 그가 잠시 후에 그 책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접어둔 페이지 끝을 꼭꼭 눌러가면서 다시 폈지요. 아아, 책을 아끼는 마음이 워낙 커서 책 귀퉁이를 접는 걸 못 참나 보다, 순간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로 저렇게 가져가서 펴다니, 실수를 지적받은 듯이 좀 무안했지요. 책이라는 게 좋은 부분은 접기도 하고 밑줄을 그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융통성 부족하고 행동이 직선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얼마간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잘못 인쇄되거나 잘못 제본된 책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출판사 대표 분이 말했지요. 제본이 잘못된 책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을 때가 제일 무섭다. 아까도 내가 드린 책에 잘못된 페이지가 있는 것 같아서 얼른 펴 보았다. 그러니까 그는 책 제본이 잘못된 줄 알고 그러면 얼른 바꿔주려고 가져다가 펴본 거였지요. 그런데 그녀는 그 짧은 순간의 행동을 융통성이 있다 없다, 성격이 직선적이다 아니다, 그의 성격까지 단정해 버린 겁니다. 흔히 낯선 사람을 만날 때는 첫 인상 초두 효과가 중요하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살아갈수록 첫인상이나 처음 만남의 몇 가지 단편적인 행동만으로 한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는 건, 어리석기도 하고 억울한 일이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첫 인상은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오히려 믿지 말고 누구든 적어도 대 여섯 번은 만나고, 만나서 한두 시간 이상씩은 꼭 이야기를 나눠본 뒤에 믿어도 되는 게 아닐까 그녀는 첫 인상의 범위와 회수 기준을 제멋대로 길게 늘여봅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19. 6. 19. 방송>

 

2. “약은 청지기(1-9)”을 읽었습니다. 개역 성경에서는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표제어를 붙이고 있는데, 내용은 주인에게 진실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한 직원이 해고를 당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장래가 걱정되어서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서 제 마음대로 탕감해 주게 된 이야기입니다. 훗날 자신이 실직한 후에 그들의 도움을 받을까 해서 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류의 말씀을 읽을 때 잠깐동안이지만 혼란을 느낍니다. 도덕성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 말씀의 본질 혹은 의도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작업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What it meant?)에 주목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부정직하고 불의한 직원에게서 도덕성을 찾거나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저의 도덕성에 의심을 가질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설교의 텍스트로 주어졌으니 말해야 합니다. 각설하고 이 직원은 당장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합니다. 그는 그가 살아온 방식대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주인의 재산을 더 축을 내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빚진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빚을 탕감해 주고 훗날을 기약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착안점은 부정이나 도덕성의 굴레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밀어닥친 냉엄한 미래였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지혜로웠다는 것이 주님의 판단입니다. 끝까지 악행을 일삼는 삶의 방식을 따랐지만, 그는 굶어죽지 않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류의 사람들은 윤리나 도덕에는 불감증인 사람들입니다. 오직 살아남는 길만이 인생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배울 점은 그의 부도덕한 정신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살아남는 처세술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훗날 이런 사람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닙니다. 어줍잖은 도덕성을 앞세우면서 처세술까지 엉망인 사람들에게, 적어도 신념을 따르던 처세술을 따르던 한 길을 걸어가기를 촉구하는 말씀이었습니다.

 

3. 어제는 그늘이 아주 좋은 도봉산 둘레길 산책을 하였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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