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98호(2019. 9. 18. 수요일).
시편 36:1-4.
찬송 42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오른 쪽 윗니 임플란트 몸체를 올리는 날이다. 치과 원장님이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기다리는 고객들에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슬그머니 치료에 임한다. 내 차례가 되어 지난번에 보철한 곳이 흔들린다고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맨 처음에 했던 그 옆 임플란트가 흔들리고 있다 한다. 임플란트도 오래되면 나사가 풀려서 흔들릴 수 있다며, 시술을 했던 곳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보라는 것이다. 붙인 곳을 떼어낸 후 나사를 조여야 하는데, 그것은 새로 비용이 드는 문제 같아 보였다. 거기다 오늘 몸체에 올릴 것으로 알고 왔는데, 다음 주일에 본을 떠서 또 열흘이 더 지난 후에야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흔들리는 임프란트를 치료한 후에야 자신들도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며 서둘러 가서 치료하란다. 갈수록 태산이다. 종로 5가에 있는 옛 치과병원에 가서 뭐라고 말문을 여나? 병원을 바꾼 게 죄인이 된 기분이다. 그러니 14년 전에 했던 임플란트를 A/S 받으러 왔다 말할까? 아니면 체면상 가만히 두고 볼 일인가? 몸체를 새로 하려면 50만원은 족히 더 들 것이다. 태산 같은 걱정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닥쳐서 해결하기로 하고 치과에 들어섰다. 다행히 옛날 시술해 주었던 의사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의사 선생도 많이 늙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인사를 나누고 치료에 대해서 의논하였다. 우선 엑스레이 상태로 볼 때, 임플란트 뿌리는 아주 튼튼하다며, 임플란트도 오래 사용하면 가끔 나사가 풀릴 수 있다며, 망치질을 해서 몸체를 분리하고 다시 몸체를 끼워주었다. 여러 차례 종이를 위아래 이와 맞물리게 하는 과정을 거친 후 치료를 끝냈다. 그리고 이를 붙이는 작업에 10만원이 드는데 오랜만에 왔으니까 절반을 깎아 준다며 5만원만 내라고 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1/10로 줄어든 셈이다. 걱정을 해서 그런지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당장 이를 쓸 수 있다는 말도 귓등에 들려주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박성완의 2019. 9. 16. 일기장에서>.
2. 압살롬의 죽음을 왕께 알리는 일을 두고 자신이 그 소식을 왕께 전하겠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압살롬의 죽음은 다윗과 온 나라에 큰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사랑하는 다윗 왕에게는 슬픈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이처럼 극명하게 다른 시각을 갖는 것은 우리 인생사에서 흔한 일이어서 그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적군의 수괴를 죽였으니 얼마나 기쁜 소식일까요? 그러나 정작 다윗 왕에게는 비보(悲報)가 되는 때문입니다. 그걸 알 리 없는 아히마아스는 아직 세상을 지혜롭게 살기에는 철이 덜 들었다 할까요? 전장의 소식을 가져오는 듯한 두 사람의 달려오는 모습을 본 다윗왕은, 첫 번째 도착한 아히마아스를 향해 “철부지 압살롬은 무사하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히마아스의 대답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눈치를 챈 것입니다. 그러자 곧 바로 도착한 구스 사람이 왔을 때, 사람들을 뒤로 물러서게 하고는 그의 보고를 듣습니다. “좋은 소식입니다.” 라고 말문을 열 때, 왕은 또 다시 묻습니다. “철부지 압살롬은 무사하냐?” 그러자 구스인은 압살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듯 말합니다. 모든 반역자는 그와 같이 당하기를 바란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적극적으로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 소위 전쟁광들입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성과 타협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때는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주장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른바 평화주의자입니다. 지금 우리는 단 하나 뿐인 지구를 백번도 더 파괴할 가공할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재래식 무기만이 아니라 원자 폭탄도 넘치도록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무기가 아니라, 그 무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늠할 수 없는 사악한 인간성에 있다고 합니다. 그 무섭다는 원자폭탄은 여러 단계의 안전장치를 두고 있어서, 안전장치를 푸는 데는 심사숙고할 시간적 여유와 까다로운 공론화 과정이 뒤따른다는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인간성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안전장치가 풀린 인간성을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 온 세상을 회칠하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누구도 아무도 압살롬의 광기를 막아서질 못하고 있습니다. “철부지 압살롬은 무사하냐?” 고작 이 한 마디 말 뿐입니다.
3. 아산의 배추밭은 태풍을 견뎌냈는데 무밭이 성글게 싹이 났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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