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723호.

시편 39:12-13.

찬송 3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을소 시인은 <어느 여인>이란 시에서 키 작은 죄로 이리 밀리고 저리 부딪혀 험한 일하며 살았다는 그녀/ 이제는 자신감 넘치고 행복하다며/ 쓰다 버린 종이컵 주워 모은 돈으로/ 장학금도 건네주고 임대 아파트도 마련했다며 웃는/ 어려운 이웃이 도움 청하면 언제나 달려간다는/ 하루 종일 하늘만 쳐다보게 하는/ 멀쩡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그날의 하늘 이야기라고 얘기합니다. 멀쩡한 자들이란 하나님이 주시면 나도 할 수 있어요.” 이런 사람아닐까?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열여덟째 주일의 구약말씀 룻 1:1-19을 본문으로, “현명한 선택은 인생을 좌우한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선택권을 주셨다고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온갖 좋은 것들 가득 찬 세상에서 네가 선택하며 살라고, 오늘도 룻에게 가르치셨듯 우리에게도 가르치신다고 말입니다.

 

선택할 기회도 없이 기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1-5).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절에, 유다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과 그의 처 나오미는, 말론과 기룐이란 두 아들과 함께 피난을 이겨내려고 모압이란 이방 나라로 이주를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먼저 죽자 그곳에서 오르바와 룻이란 이름을 가진 두 자부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 머물던 10년 동안 두 아들마저 세상을 떠나 세 명의 과부들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인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입니다. 가뭄과 흉년으로 고향에서도 살 수 없었던 엘리멜렉의 가정이 그랬습니다. 가난을 대물림하고도 크게 불평불만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운명이려니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선택의 기회도 없습니다.

 

선택의 순간은 우리 모든 인생 앞에 던져집니다(6-14).

삶을 운명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기를 써도 꼼짝달싹을 하지 못할 때, 우리는 운명이라는 말로 슬픔을 달래곤 합니다. 고린도 시를 창설한 시지프스는 지옥의 신을 속인 죄로 바윗돌을 비탈길 위로 올리는 벌을 받게 되는데, 이를 두고 인간의 운명이니 부조리니 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우리 인간 앞에 반드시 선택이라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말씀합니다. 고국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고, 시모 나오미는 자부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큰 자부는 시모의 간절한 청에 따라 자신의 나라와 가족들 곁에 남는 선택을 합니다. 가장 현실적 선택일 수 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란 물결에 순응하는 선택입니다.

 

둘째 자부 룻은 시모를 따르는 선택을 합니다(15-19).

한 때 한 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 문구의 효력은 시장에서만이 아니라, 학교나 교회에서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현명한 선택의 가치나 중요성을 깨워준 것입니다. 선택에 관계된 유대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광주리에 담긴 무화과 중에서 항상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것부터 먹는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더운밥을 앞에 두고 식은 밥부터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각각의 환경이 다르지만, 유대인의 선택이 훨씬 더 현명하다 생각됩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최상의 것을 선택할 때는 언제나 행복감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삶에는 수 만 가지의 선택의 기회가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일어날까 좀 더 앉아 있을까? 언제나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현명함을 기도 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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