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89(2022. 2. 25. 금요일).

시편 시 61:1-4.

찬송 7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짐을 꾸리고 있을 친구에게>    어제 너랑 메신저로 얘기를 나눌 때는 가볍게 듣고 넘겼지만, 할 말이 좀 남은 기분이 들어서 이 편지 쓰게 됐어. 어젠 넌 결국 중도 포기를 하고 짐을 꾸리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많이 안타까워했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큰 맘 먹고 멀리까지 공부하러가서 다 끝내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니.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만 되풀이 했던 거겠지. 이 편지를 쓰기 전에 고민을 좀 했어. 그냥 모르는 척 하자, 남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너 자신이나 잘해라. 내 자신에게 이런 잔소리를 한 무더기 쏟아 부었어. 그러니 편지 다 읽고 혹 마음 상하더라도 내가 쉽게 이런 편지 보낼 결심을 했다는 오해만은 하지 말아주길 바래. 너 공부하러 간 뒤에도 가끔 너의 집에 들르곤 했었어. 같은 동네인데다가 너 있을 땐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더니, 너 없다고 발길 딱 끊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래서 들려서 너의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전처럼 가게일도 좀 돕고 그랬지. 넌 막연히 환율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줄로만 알고 있지만, 너의 부모님 가게는 아니 대부분의 이곳 가게들은 이미 작년 가을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했어. 환율도 환율이지만 그 여파로 장사도 거의 반 토막이 났지. 너에겐 그런 내색 전혀 안 하셨겠지만 말이야. 짐 정리하면서 자질구레한 짐들 다 벼룩시장에 팔아버리겠다고 했지. 난 네가 그저 공부를 마저 못 끝낸 안타까움 억울함 이런 것도 다 그 곳에 내려놓고 활짝 웃으면서 귀국했으면 좋겠구나. 네 부모님의 속 쓰림에 비교해 볼 때, 너의 아픔은 어쩌면 덜 쓰라릴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야. 너의 엄만 네가 못난 부모 만나서 고생한다면서 눈물까지 보이시더구나. 그 모습 떠올리면서 관둘까 했던 이 편지 결국 다 쓰고 말았어. 나중에 후회할지 모르겠지만, 이곳 분위기 너의 엄마의 눈물에 대해서 꼭 귀띔에 주고 싶은 내 마음,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어<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9319일 방송> a.

 

2. “예루살렘 입성(12-19)”을 읽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대 나라의 수도이면서 유일무이한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이 위치한 곳입니다. 그래서 유대 율법에 따라 유대인 성인(13세 이상으로 바르 미츠바라고 부름)은 적어도 3대 명절에는 성전을 방문하는 전통이 있기에 자주 찾는 곳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을 성경학자들은 예루살렘 입성이라는 엄청난 주제어를 붙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번의 방문은 유대인 성인들이 매년 3차례 이상 방문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특별한 방문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하겠습니다. 첫째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12).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평범한 명절 지키기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평범한 삶의 톱니바퀴 같은 과정을 밟는 것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배우듯 말입니다. 둘째는 죽음으로 가는 행진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예루살렘 방문은 주님께서 마지막 방문이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붙들려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알고 가는 길인 때문입니다(13-16). 셋째는 희망과 절망을 세상에 가져다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13-19).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예루살렘의 소시민들에게는 희망이었지만,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절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서 배우고 깨우치는 것들 중 하나는, 어떤 일에서나 또는 모든 문제들에서는 언제나 양면성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들은 목숨은 물론 직장과 가정을 잃기도 했습니다. 분명 절망적인 것이고 비극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새로운 발견이고 기회이며 희망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값비싼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한 주제는 극심한 개인주의보다는 공동체적 이해와 배려가 중요하다는 인식이었습니다. 우선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인간이 자연과 친화적인 삶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쥐 등 자연계에 상시로 존재하는 바이러스를 혼란케 하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인류 공동체가 이기적인 욕망에 빠질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공생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셧다운을 경험하면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놀이로써의 즐거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가 이 일에 선구자가 된 셈입니다. 앞으로 많은 나라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문화를 세상에 소개하고 나누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 인류 앞에는 절망의 소식이 들려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의 소식도 들려오고 있음을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귀를 열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망이 될 수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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