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36호(2022. 4. 13. 수요일).
시편 시 70:4-5.
찬송 41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아버지 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지요? 영화나 노래 광고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예전과는 사뭇 다른데요. 근엄과 권위의 상징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부드럽고 자상한 친구 같은 이미지로 많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한 아버지 학교에도 아버지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고 하지요. 아이들의 학교 활동에도 아버지들의 참석이 부쩍 늘고 있고, 직장에서도 아버지의 교육이 인기라고 합니다. 아이와 함께 시장을 보는 아버지, 아이와 함께 책을 고르고 책을 같이 읽는 아버지, 아이와 함께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들이 이 세상을 환하고 부드럽게 만들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년 4월 17일 방송>
2. “계획 변경의 변명2(1:23-2:4)”과 “잘못한 자를 용서하라(5-11절)”을 읽었습니다. 승려도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승려 출신 한용운은 <알 수 없어요>라는 시에서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누구의 노래입니까?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라고 노래했습니다. 일제에 항거하던 독립투사의 거칠 것으로 생각되는 가슴에서, 이렇게 따뜻하고 여유로운 시심이 흐르고 있었다니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들 역시 알 수 없는 수만 가지 것들 속에 섞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마음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방문을 포기한다 밝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라는 말의 의미가 얼마나 폭넓고 깊고 높은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따지지 않고 받아들임이라는 말의 이해, 분명 따진다면 또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질 수 있으련만, 그래서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상책일 때도 많으니 그래야 덮어지고 화평할 것입니다. 그런데 먼 훗날 정말 이해되는 날이 올 것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잘못한 자를 용서하라”라는 주제어를 붙였는데, 사도가 말하고 있는 사람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인물임에 분명합니다. 그는 사도와 사사로운 관계에서가 아니라 비교적 공개적으로 사도와 교우들과 마찰을 가졌던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메시지만을 전했을 것 같은 사도에게도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음을 짐작케 하는 내용입니다. 미루어 짐작컨대 사도가 밝히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가령 저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익명의 기탁자에게서 정기적으로 기탁금을 받았는데, 교회가 돕기 힘든 어려운 가정이나 어려운 학생에게 도와주라는 부탁과 함께 말입니다. 그래서 기탁자와 수탁자를 밝히지 않고 매월 받은 기탁금 전액을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재정부에서는 기탁자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모든 내용을 소상하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문제 삼아 수시로 저를 괴롭힌 장로가 있었습니다. 예배 시작 직전까지 혈기를 부리면서 말입니다. 그때마다 기탁자와의 약속이 있었고, 저를 의심하지 말라고 하면서 말렸지만, 결국 기탁자에게 송구하다는 말씀과 함께 그 내용을 문서로 써줄 것을 부탁해서 당회에서 밝히게 되었습니다. 시작 지점부터 지금까지 매월 얼마씩의 기탁금을 어떻게 저에게 맡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대조한 다음에 그 장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제 목회에서 가장 힘들었던 얘기 중 하나입니다. 지금껏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 일을 잊어버리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 용서란 “지워 버리는 것, 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용서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사도는 용서하라고 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우치기 위함이라고 진리입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들추어내고 기억하는 한 우리는 용서한 것도 아니고, 용서할 수도 없음을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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