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70호(2023. 3. 13. 월요일).
시편 시 119:159-160.
찬송 5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선 말기 서양의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양악이라고 불리던 서양의 음악 역시 접할 수가 있게 됐습니다. 당시 양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작곡을 시작한 이들은 적지 않았습니다만, 그 중 한국 서양음악의 선구자라는 칭호아래, 눈에 띄는 활동을 한 이가 홍난파와 현제명이었지요. 나이는 홍난파가 현제명보다 다섯 살 손위였지만, 비슷한 시기에 유학을 하고 귀국을 해서, 작곡과 음악 활동에 전념하면서 두 음악가의 활약은 초기 한국 양악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가져 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도 유학시절은 무척이나 춥고 외로운 시기였겠지요. 첫 딸의 출산을 보지 못하고 미국 유학을 떠난 현제명에게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고향생각>과 <산들바람>은 바로 그 시기에 작곡된 작품이었습니다.
“산들 바람이 산들 분다. 달 밝은 가을밤에 달 밝은 가을밤에 산들 바람 분다. 아, 너도 가면 이 마음 어이해. 산들 바람이 산들 분다. 달 밝은 가을밤에 달 밝은 가을밤에 산들 바람 분다. 아, 꽃이 지면 이 마음 어이해.”
현제명의 두 번째 작곡집에 수록된 곡입니다만, 안타깝게도 당시 자료는 한국 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현제명은 귀국 후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해서, 경성 후생 실내악단을 만들어서 지방 순회공연을 다녔던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단장이었던 현제명이 마지막 독창자로 무대에 서는 날이면, 무대에 서기전 의례 마스크를 하고 무대 뒤를 조용히 걷곤 했다고 하지요. 노래하기 전 목을 쓰는 것을 최대한 피하고,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작곡가였지만 그 이전에 촉망받았던 성악가로서, 현제명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화였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3월 11일 방송>
2. “초막절 명절에 올라가신 예수(10-24절)”, “이분이 그리스도인가?(25-31절)” 그리고 “보내신 분에게 돌아가리라(32-36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성전세(반세겔)을 내는 의무와 함께 3대 명절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지키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명망가(名望家)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기본 의무를 자발적으로 지키는 경향이 있었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엊그제 예수님은 형제들과의 말씀에서는 명절에 유대 지방엘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음모를 알고 있는 이상 불쾌한 심정을 숨기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형제들이 명절을 지키러 올라간 뒤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올라가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 기자는 명절 분위기를 전하면서, 군중들 사이에서 예수님에 대한 평을 남기고 있는데, 예수님을 좋은 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군중을 속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하면서,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작은 일상이긴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예수님의 성품을 소시민처럼 기술하고 있는 때문입니다.
명절 중간쯤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 백성들을 가르쳤는데, 청중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말들을 기록하기를, 배우지도 않은 분이 아는 것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분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라며, 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이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알 것이라고 대답처럼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미 하나님의 가르침인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려 했을 때 많이 묵상한 때문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법이라고 알고 있는 율법을 대놓고 떠들기는 하지만, 실상은 그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자, 군중의 항의하는 소리도 있었는데, 이때 저 유명한 안식일 논쟁에 해당하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립니다. 모세가 할례법을 명했다 해서 안식일에도 유대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하는데, 자신이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거나 선한 일을 했다 해서 문제를 삼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니냐는 내용입니다. 할례법이란 유대 사내아이가 생후 8일째 되는 날 양피는 베는 일을 말하는데, 할례일은 생후 8일째 되는 날이므로, 안식일에 해당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식일의 법과 할례가 충돌할 때도 우선했던 것은 할례가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건 약속인 때문일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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