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목사님께.
K 목사님께.
요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여선지 낮과 밤이 기온 차이가 큽니다.
이런 때 건강관리에 신경쓰시기 바랍니다.
어제 예배를 드린 교회는 이곳의 한 감리교회입니다.
매 주일 교회력을 따라 성령강림후 몇째 주일이라고 꼭 밝힐 뿐 아니라,
성경본문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만 빼고는 루터교회와 너무 흡사합니다.
그래서 속으로 성경본문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껍데기 뿐 아닌가? 살짝 흘겨보곤 합니다.
어제 설교본문은 정상적으로는 출 6:2-8, 롬 11:33-36, 마 16:13-20입니다.
그런데 딱 한곳 성경구절을 읽었는데 요 4:6-10이었습니다.
설교제목은 "우물가의 여인"이었고,
대지는 첫째 외로운 여인, 둘째 상처입은 여인, 셋째 갈급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초점이 예수님을 만난 여인이거나 문제를 안고 있는 인간을 찾으신 예수님이 아니고,
우리가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한 인간 우물가의 여인이었습니다.
전형적인 율법적인 설교였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인간에게 초점을 두는 설교였기 때문입니다.
외롭고 상처입고 갈급한 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이런 볼품없는 인간이 예수님을 만나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수님을 쳐다볼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했어야 옳았습니다.
우선 제목부터 달라져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라든지,
"예수님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든지,
"우물가의 여인을 변화시킨 예수님"이든지,
아니면 "문제 한복판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이라고 했어야 옳았습니다.
우리는 똑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도토리 키재기 하듯 문제풀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회의 설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이 아니라 율법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예배당에 찾아왔던 우물가의 여인 같은 누군가가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그 복음적인 설교 때문에 그 분의 인생이 180도로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단언컨데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무리 감동을 받았다 하더라도그것은 한 순간의 감동이나 기쁨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절대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K 목사님.
앞으로 몇 번이나 설교할 기회가 주어질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 제한된 기회를 헛소리나 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자신에게 강권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일에는 농인교회에서 설교를 할 예정입니다.
저도 명심하고 헛소리나 하는 그런 설교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에 주의를 기우리겠습니다.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