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형께.
오랫만에 글을 씁니다.
올 여름은 6월에 시작된 듯 합니다. 연일 30도 주변을 맴도니 말입니다.
저는 에어컨을 무척 싫어해서 아내와도 자주 다투는 항목입니다만,
그래서 아예 아산 집에는 에어컨을 들여놓지 않고 여름을 나곤 합니다.
다행히 올해는 거실에서 창고 쪽으로 맞바람이 불도록 방충망을 설치했습니다.
바람만 불어주면 아무리 더워도 여름은 잘 날 것 같습니다.
6월 한 달을 마을 쓰레기장 당번을 맡았는데,
이것도 일이라고 조금 힘이 듭니다.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데, 편의주의를 택하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박스 안에다가 온갖 쓰레기를 다 넣어서 버립니다.
문제는 박스를 가져가는 아주머니가 그걸 알고 며칠 째 수거해 가지 않은 것입니다.
가까스로 타협을 해서 다시 분해해서 묶어서 올려놓으면 가져갑니다.
싫은 소리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중입니다.
그런데 어젯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목사들 모임에 참석했는데, 잔소리할 일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잔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물론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조용히 늙어가시라는 말까지 들렸습니다.
그때 휙하고 스쳐가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주님의 말씀이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들을 귀 없는 자에게는 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 뒤에 어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교회력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성령강림절후 몇 째 주일이었는데, 주보 앞면에는 그렇게 기록해 놓았는데,
정작 광고란에서는 11월 말까지 성령강림절기를 잘 지키자고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강림절이 무려 6개월이나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메일로 정정하라 부탁하려다가 마침 오찬 시간에 앞 자리에 앉아 있기에 입을 열었습니다.
성령강림절은 유대인의 오순절과 같은 날이라는 말로 운을 뗀 후,
성령강림절은 부활절과 마찬가지로 딱 하루만 그렇게 부른다고 말입니다.
성령강림절 다음 주일은 성삼위일체주일이고,
그 다음 주일은 성령강림절 후 둘째주일이라고 말입니다.
예전에는 Seasons of Pentecost라고 불렀고, 오순절 후 몇째 주일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오순절은 유대인의 절기이고, 기독교회는 성령강림절로 부르는게 옳다 해서 고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는데 젊은 목사님의 표정이 경색되는 것 같았습니다.
괜히 말을 꺼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은 못해도,
제가 쓸데없는 얘기를 했지 않나 싶어 마음이 언짢습니다.
그래서 꿈까지 꾼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부터 살펴야 하겠습니다.
제가 묵상자료에 방송녹취한 글을 올린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올리는 방송글들은 가끔 로마 가톨릭의 얘기도 올리고,
때로는 절간이나 모슬렘에 관한 얘기도 올립니다.
까닭은 첫째는 저의 글이 아니라는 점, 둘째는 우리 기독인들도 들을 만한 얘기라는 점,
셋째는 우리가 세상에 사는 한 조금 폭 넓게 세상을 보자는 등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묵상식구 중에 어느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제 묵상자료를 올리는데,
로마 가톨릭 얘기나 스님들 얘기, 그리고 모슬렘 얘기에 반감을 가진 것인지는 몰라도,
그런 얘기들을 다 빼 버리고 빈 칸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들을 귀가 없는 아니면 마음의 빈 자리가 없는 분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L 형 !
우리는 천국에 가기까지는 이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야 하고
필요하다면 우정을 나누어야 합니다.
저는 아산에 사는 몇 가지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온천욕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온천욕장에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온 몸을 문신으로 용이나 호랑이를 그린 사람들도 있고,
소리를 고래 고래 치는 사람, 물장구를 심하게 치는 사람 등등 무례한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관리인이 들어와서 제지하기까지는 함께 같은 탕 속에서 지내야 하지 않습니까?
은행에 비치된 지로요금 기기앞에서 당황하는 한 비구니 스님을 친절하게 도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더 넓게는 우상의 소굴속에 살고 있던 우리들에게 찾아온 선교사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이교도들을 만나지 않고, 교제하지 않고, 섬기지 않으면서 어떻게 전도할 수 있을까요?
들을 귀 없는 크리스천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나이가 든 사람이니 이젠 말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겠습니다.
여름을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산에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