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없는 편지

손녀 여름이에게.

박성완 2018. 7. 19. 04:10

네가 이 외할아버지의 편지를 읽을 때는 아마도 숙녀가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너희들이 우리를 찾아와서 같이 지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내가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나를 피하는 것 잘 알고 있다.

네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잔소리꾼이 없었을 텐데, 많이 힘들지 모르겠구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층간 소음문제로 다투다가 결국 우리에게 집을 팔고 떠난 전 주인이 생각이 나는구나.

그런데 아랫 층에는 여전히 그 무섭다는 호랑이 할머니가 계셔서 늘 마음을 졸이는 형편이다.


오늘은 집중력에 대해서 한 마디 잔소리를 하려고 한다.

어제는 네가 오목을 두겠다며 휴대용 바둑판을 가지고 내게로 왔었구나.

할아버지와의 대결에서 너는 완패를 했었지. 

네 엄마와 동생 가을이가 응원을 열심히 했는데도 말이다.

어떻게 나를 이길 수 있겠느냐?

그 때 내가 집중력에 대해서 몇 마디 했던 것 같구나. 

너는 TV를 보면서 게임에 응해서 했던 말이다. 

집중한다는 말은 한 가지 일에, 혹은 한 가지 문제에 정신을 쏟는다는 뜻일게다.

요즘처럼 열대야가 계속되고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에서는 집중이라는 말이 걸맞지 않을 게다.


그런데 여름아 !

나는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저 시원한 에어컨을 켜두고 수박이나 먹는 것이 제격인 이런 때에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미룰 수가 없어서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설교를 준비하거나, 강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이런 불리한 때를 골라서 가장 힘든 일에 도전하곤 했었다.

그 결과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해야 하거나, 설교 준비를 할 때, 

혹은 책을 집필할 때에도 가장 무더운 시기를 택해서 그 힘든 작업을 했던 일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무더위나 추위는 오히려 집중력을 가지기에 역설적으로 더 좋은 환경이라고 말이다.


첫째는 집중력을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집중력을 훈련하지 않고 희망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잘못된 기대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장 좋은 집중력 훈련으로 방송에서 준비한 방송작가들이 쓴 글들을 듣고 녹취하는 것으로 삼았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2천년대를 시작하면서 가까운 지인들 약 100명에게 하루 한편의 묵상자료를 보내기 시작했다.

2015년 2월에 은퇴를 하고 나서도 계속하고 있는데, 오늘까지(2018. 7.19) 보내고 있는데, 

첫 단락에는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하는 내용이었고, 

둘째 단락은 그날의 성경말씀을 읽고 내가 깨달은 말씀의 뜻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반응이 좋아서 오늘까지 6,272호를 메일로 보냈다.

아마도 내가  세상에 살아 있는 한은 계속하려고 마음 먹고 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책 소개하는 것이 바닥이 나고 말았단다. 

그래서 응급처치로 KBS FM 1 라디오가 하루종일 음악방송을 내 보내는데, 

거기에 방송작가가 금과옥조같은 글들을 송출하고 있더구나. 

그래서 그걸 녹취해서 나누고자 생각했단다. 

그러려니까 자연히 방송을 제대로 들어야 받아쓸 수가 있지 않겠느냐?

하루에 평균 2시간은 녹취에 시간을 쓰는데, 그때 얼마나 집중력을 동원했는지 모를거다.

다행히 방송국에서는 <다시 듣기>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그걸 이용, 3-4회를 들으면 녹취할 수 있었다.  

녹취를 하려면 혼신의 노력을 다해 귀를 기우려야만 한다. 

그렇게 2시간을 집중하다가 보면,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되어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고,

전혀 다른 것들에는 눈을 돌릴 수도 귀를 열수도 없었구나. 실제로 이어폰을 가장 약하게 해 두었었다.


집중력이란 마음먹기만으로는 힘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 녹취를 그 방법으로 삼을 수 있다면, 충분히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로 집중력은 시간표를 만들어 진행하는 게 효과적이다. 

일종의 목표를 정하고 일을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보건학>이란 과목을 교양과정으로 공부해야 했었다.

그런데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던 것밖에 없구나.

그러니까 <일일 계획서>, <한 주간 계획서>, <한 달 계획서>, <1년 계획서>, <4년 계획서>, 

<일생계획서>를 6주에 걸쳐서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그 때 나는 매우 중요한 것을 깨우쳤고 배웠다.

계획이란 일생 계획처럼 엄청나게 광범위한 것으로 출발하는 게 아니라,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하루 계획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하루 하루가 충실해야 한 주간이 충실해 질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하루 중에서도 30분 단위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운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능률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논문을 쓸 때는 우선 필요한 주제에 맞는 책들이나 다른 논문들을 찾는 일이다.

그래서 오전 3시간은 도서관을 방문해서 도서와 논문 리스트를 작성하기로 한다든지,

그리고 남은 1시간은 그 도서와 논문의 목록을 읽고 해당 여부를 판단해서 고르는 일을 한다든지.

그런 방법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진행하는 시간표를 만드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시간표를 따라서 일을 하면 효과적이더구나.

지금 할아버지가 아산에서 농사를 지을 때도 같은 방법으로 생활한다. 

농사를 짓는 일은 힘이 드니까 내 나이에 알맞게 체력을 안배해야 하는게 중요하단다.

그렇게 하는데 시간표를 작성하는 게 얼마나 유용한지 모른다.

우선 재배할 작물을 선택하고, 종자를 고르는 것과 비료를 준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무 것이나 심는 게 아니란다. 계절에 맞는 작물이 있고, 토양에 맞는 작물이 있다.

그리고 좀 더 과학적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의 도움도 받으면 좋더구나.

종자에 대해서도 많은 자료들이 나와 있고, 

재배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단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무작정 시작하고, 실패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표를 따르는 것이다.


세번째는 머리 속에서 맴돌다 끝내지 말고, 일단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좋은 생각들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생각은 자유롭고 마음대로 가능하지만, 실천이란 실제로 힘든 일이 뒤따르는 때문이다.

나는 네가 아는대로 41년이란 세월을 목사로 신학자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나름 생활목회자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그동안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여러 날 혹은 여러 달 고민한 후에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정리해서 교인들에게 알리곤 했다. 

필요하면 5년 계획서 10년 계획서 같은 챠트를 작성해서 목사실에 걸어두었다.

혼자만 생각하거나 혼자 생각을 말로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의지를 여러 사람들 앞에 발표하는 것이다. 

이렇게하는 이유는 내가 가졌던 그 좋은 생각을 혼자서 마음대로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실천한 일들이 참 많이 있었다. 

제직 수련회를 버스를 전세내어 2박 3일간 전국 명승지에서 갖는다는 것을 10년동안 실천했고,

전교인 성경학교를 신학대학을 빌려 3년간 실천에 옮겼고, 

교회 예산도 형편없을 때인데도 10년 후에 150평의 교육관을 짓겠다는 계획도 실천했으며, 

루터교회 교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교육도 10년 이상 진행했었다. 

그리고 교회 창립 30주년에는 교회 사료집을 발간하는 계획도 실천했고, 

교회 창립 48주년에는 850평의 현대식 새 교회당도 지어 봉헌할 수 있었다. 

심지어 목사 은퇴도 새 교회당을 봉헌하고 그 달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림으로 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혼자서 머리 속에만 담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과 그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고, 책임감을 더 크게 느끼고 일에 전심전력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사랑하는 여름아 !

어린 아이들에게 바둑공부를 시키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좋은 생각이라고 믿는다. 집중력을 키우는데 이만한 방법이 없을지 모르겠다.

어떤 분들은 낚시도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하는데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내 아버지가 평생 낚시를 하셔서 시간을 허투로 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낚시하러 가시면 집안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셨으니 말이다. 


혹시 내가 제안한 방법들이 네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기쁜 날을 내가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오늘은 이만 줄이겠다.


서울에서 너의 외할아버지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