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28. 부활절 일곱째요일] 진리 안에서 하나되라. / 요 17:11b-19.
묵상자료 1837호.
시편 133:1-3.
찬송 37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종종 만날 수 있는 사람 중에 물건 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 파는 물건들 칫솔 열개에 단 돈 2,000원인 것도 있고요.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이 나오고 황사가 심한 날은 마스크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요. 70, 80년대 유행했던 팝송을 묶은 시디를 파는 분은 지하철 안이 떠나가도록 팝송을 틀어놓고 추억을 팔기도 합니다. 대부분 1,000원 2,000원짜리 물건이 많은데요. 파는 분의 말을 듣고 호기심에 샀다가 집에 와서 보면, 하루 만에 고장 나는 물건들이 상당수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물건들을 보이는 대로 사는 소설가가 잇습니다. 그 소설가의 아버지도 그러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 앞에는 지하철에서 산 물건 중에 한 가지만 내 놓는다고 합니다. 산 물건 모두를 풀어 놓으면 쓸데없는 물건을 왜 이렇게 많이 샀느냐? 타박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겠지요. 자신에게는 큰 소용이 없어도, 때로는 그것을 파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되는 물건이 있는 것이라는 설명 앞에서 미소가 났습니다. 다른 사람의 희망을 위해서 손을 빌려준 적이 언제였는지 돌아보고 싶어지네요.<KBS FM 1, 정다운 가곡, 2006년 5월 26일 방송>
2. 모든 종교는 기도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란 절대자의 도움을 구하는 신앙행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함은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는 뜻이며, 예수님도 기도하셨는데, 우리들 역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이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름답고 귀한 기도였습니다(11절).
아름답다는 인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인식하는 사람의 이해나 느낌에 따라서 달라지는 때문입니다. 저마다의 다른 인식을 공통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인 인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 씀과 행동일 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그래서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지 못한 체 사분오열 되어 갈등하고 있는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릴 뿐 아니라, 기도하듯 사셨습니다. 가족이란 공동체나 이해관계를 가진 공동체를 훌쩍 뛰어넘어, 이 세상을 흔드는 온갖 문제들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미움과 분쟁들을 깨트리고 하나 되도록, 기도하며 삶도 그렇게 사신 것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 때 참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11절).
하나가 된다는 말은, 똑 같아 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똑 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똑 같은 일을 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가 된다는 말은 잘 어우러진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할아버지와 손자가 똑 같아질 수 있습니까? “다양성 속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고, “조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인정되고 격려를 받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남북의 갈등 못지않게 동서의 갈등과 빈부의 갈등, 그리고 최근에는 노소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에게 어울림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경쟁의 대상이나, 손익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함께 도우며 살아갈 이웃으로 삼으라는 기도이십니다. 인생길을 힘들게 달리는 마라토너들에게 함께 뛰어주는 고마운 이웃으로 말입니다. 사랑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은 우리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의 목표였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과제가 있습니다(13-19절).
지난 주 제게 배달된 한 팜프렛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선교>라는 긴 제목이 붙은 글이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죗값만도, 게을러서만도, 문제가 많아서도 아니라, 그들 역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있는 소중한 생명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우리 곁에 맡겨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마26:11). 그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지고, 더 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돌보아 사람답게 살도록 일으켜 세워주라고 말입니다. 노인요양원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 죽는 것 외에 다른 일이 없다.”고 절망하는 분들에게, “옆에 누워계시는 분에게 사랑의 말을 건네고, 따뜻한 마음으로 손을 잡아 주십시오. 그것은 바로 당신을 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일입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내 코가 석자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랑의 눈길을 보내십시오. 주님의 명령일 뿐 아니라, 우리 기독교인이 위로받고 용기를 얻으며 기뻐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