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잘 짊어지게 하는 힘. / 창 42:29-38.
묵상자료 3948호(2012. 3. 8. 목요일).
시편 131:1-3.
찬송 36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아침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습니다. 언제 추위가 끝날까 싶지만, 머지않아 매화 동백 잎 피고 곧 이어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앞 다퉈 우리 앞에 당도하겠지요. 그런데 이 곱고 예쁜 것들은 언제 어디에서 생길까요? 봄이 되면 어련히 알아서 가지에서 처음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겨울이 오기 전부터 이 예쁜 것들은 세상에 얼굴을 들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겨울 눈 속에서지요. 눈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 막 터져 식물의 싹을 말하는데요. 여기에는 꽃을 피어날 꽃눈도 있고, 잎으로 펼쳐질 잎눈도 있고, 이 모두가 한 눈 속에 들어 있는 눈들도 있습니다. 특히 꽃눈을 잘라보면, 모양과 숫자를 다 갖추고 이미 다 만들어진 꽃잎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때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봄이 오고 나서 서서히 조직을 분화하는 나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꽃나무들은 이렇게 꽃으로 피어날 꽃눈의 분화를 마친 상태에서 겨울을 납니다. 하지만 꽃과 잎은 혹독한 추위를 나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요, 그래서 나무들은 여러 가지 전략을 써서, 겨울눈으로 꽃과 잎들을 보호합니다. 예를 들어, 백목련의 겨울눈은 회색 솜털 옷을 입고, 물푸레나무의 겨울눈은 검은 색에 가까운 가죽 코트를 입고 있습니다. 라일락은 여러 겹의 비닐 잎에 둘러싸여 있고요. 마로니에 겨울눈은 끈적끈적한 진액으로 덮여 있지요. 그야말로 사람들이 겨울에 입는 코트만큼이나 다양한 모습들입니다. 겨울눈의 또 다른 이름은 저항아인데요. 한 겨울의 매서운 추위에도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버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봄이 돼서 갑자기 생기는 꽃과 입,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이미 만들어져서 겨울 눈 속에 들어 있었고, 지금은 단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의 오묘한 이치가 새삼 놀랍고, 겨울눈의 모습이 마치 꿈을 품은 사람이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지혜와 힘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 같아, 더욱 감동적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1월 30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야곱의 탄식>이라는 제목으로 묵상할 만한 내용입니다. 자식의 고통이나 죽음을 보는 것만큼 더 큰 비극은 없을지 모릅니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아들 요셉을 잃고 슬픔 속에 살아가는 야곱은, 라헬이 출산하다가 목숨까지 잃으며 얻은 아들 베냐민까지 생사가 불투명한 애급으로 내려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되자, 절망감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볼모로 잡힌 시므온까지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11명의 자식까지 잃을지도 모르는 죽음의 땅으로 보내야 할 형편이 된 것입니다. 야곱의 심정을 헤아려 보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을 주목해 보는 좋은 기회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입버릇일지 모릅니다. 최악의 상황이란 되돌릴 수 없는 절벽 끝에 매달린 국면과 같을 것입니다.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이들이나, 화마로 집을 통째로 태워버린 이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이런 때가 절대로 와선 안 되겠지만, 남의 일 같지 않게 찾아오곤 합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에게도, 법 없이 살았다는 사람들에게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절망을 이겨낸 사람들이 보여준 것은 어쩌면 그런 절망을 절망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절망이 희망의 뿌리가 되고, 아픔이 또 다른 회복을 가져다주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난 5일 미국 버지니아 센터빌의 한인 중앙장로교회에서 치러진 장례식의 주인공 고 강영우 박사는 13살에 실명하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고, 큰 누나마저 그 뒤를 따랐던 비극중의 비극 앞에서, 남겨진 두 동생과 함께 무엇으로 삶을 버텼을까요? 그런데 그는 이런 시련들이 축복이었다고 회고했으며, 췌장암으로 2-3개월의 생명이 주어져 있음을 축복의 시간으로 삼겠다고 했던 것 역시, 절망을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때나 하나님은 그와 동행하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