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여호와의 은총이. / 창 43:1-15.
묵상자료 3949호(2012. 3. 9. 금요일).
시편 132:1-5.
찬송 45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사람의 인상(人相)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인상학이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인상학자는 얼굴에 있는 눈코입귀, 이목구비와 관상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눈은 그 사람의 정신이 머무르는 집이며, 코는 재물을 모으는 금고이고, 입술은 긍정과 부정의 사고방식이 들어나는 통로이며, 귀는 유년 시절의 성장보고서다.” 그야말로 이목구비가 저마다 그 사람 인생을 한 가지씩 담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하나만 좋다고 다 좋을 수 없고, 하나가 나쁘다고 다 나쁠 수도 없습니다. 거기다 인상이 아닌 관상에서는 이마와 뺨이라든지 턱 같은 것까지 다 그 사람의 운세에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상학자든 관상을 보는 관상 전문가든, 가장 중요한 건 그 부분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이루는 전체적인 표정이라고 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이목구비로만 봐서는 크게 복이든 얼굴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격이 긍정적이고 웃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면 어느 덧 입 꼬리 부분이 약간 올라가면서 표정이 바뀌어서, 복을 크게 불러들이는 얼굴이 된다고 하지요. 반면에 평소에 화를 잘 내거나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많이 물게 되고 입 꼬리도 내려갑니다. 그러면 오던 복도 달아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겠지요. 또 다른 관상전문가는 말합니다. “사람에게서 제일 나쁜 관상은, 빈 주전자를 불에 올려놓은 표정의 관상이다.” 늘 화가 나 있거나 바짝 애를 태우는 표정이, 제일 나쁘다는 겁니다. 하지만 좋든 나쁘든 사람의 관상이 한 사람의 운명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보다도, 또 흔히 말하는 사주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갖는 건, 바로 심상(心狀), 마음의 생김새라고 합니다. 그 사실을 깨우치면 더는 점을 보지 않게 된다는 데요. 마음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점도 아무 소용이 없어지니까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2월 7일 방송>a.
2. 우리는 드물긴 하지만 매우 중요하고도 위험한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결단입니다. 그것은 자칫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될 때는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애급에 보내야 했습니다. 혹시 잘못되면 그 자식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양식을 구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야곱이 보여준 결단에는 한 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요셉)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를 원하노라.” 라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주변의 이웃들 얘기를 듣다보면,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탄식을 하고 최후의 방법이라며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경우들을 보면서, 참 딱하다는 생각을 갖곤 하지 않으셨는지요? 그런데 차분히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저마다 빠듯한 삶을 짊어지고 가느라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어떻든 이런 비상한 결심을 해야만 할 때, 유비무환이니 하면서 자신과 남을 탓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수 없을 때, 우리 역시 야곱처럼 행동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활동하시라고 말입니다. 사실 시편 121편의 주인공 역시 그런 절망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눈을 돌리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로다.” 이런 마음은 모세도 가졌었고, 다윗도 가졌으며, 에스더 역시 가졌던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간에, 하나님을 향해 눈을 돌리는 마음 말입니다. 절망의 그늘이 온 몸과 마음을 사로잡을 때, 바로 그런 때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위급한 순간이 닥쳐오기 전에, 그 하나님을 보며 살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만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