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뒤편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 창 45:1-15.
묵상자료 3953호(2012. 3. 13. 화요일).
시편 133:1-3.
찬송 50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끔 태양 있는 풍경 사진을 보면, 이것이 지금 해가 뜨는 아침 풍경일까, 지는 저녁 풍경일까 구별이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때론 그 사진을 볼 때 마음에 따라서, 아침 장면으로 보이기도 하고, 저녁 장면으로 보이기도 하지요. <빼돌린 연애편지>는 19세기 독일 화가인 칼 슈피츠백 혹은 칼 슈피츠벅이라 불리는 화가의 작품입니다. 그림은 위아래 두 층 창문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아래층 창문 안 오른 쪽에는 젊은 여성이 앉아서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좀 더 나이든 여성이 서 있는데,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깜짝 놀라는 중입니다. 허공에 편지 하나가 둥실 떠 있어서지요. 그 편지는 2층에 있는 사람이 잡고 있는 긴 줄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줄이 2층에서 자신이 쓴 편지를 매달아 내려트리던 줄이었는지, 아니면 아래 있던 편지를 걸어 올리던 줄이었는지 불분명합니다. 위층에서 줄을 잡고 있는 사람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언뜻 구분이 안 가지요. 누군가는 그 그림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아래층의 젊은 여자는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워서, 남자들로부터 수많은 연애편지를 받는다. 그 모습을 보던 2층의 여자가 질투가 나서 젊은 여자에게 가던 중요한 연애편지를 몰래 줄에 걸어 가로채는 중이다.” 그림은 순식간에 여자의 질투가 얼마나 음흉한지를 보여주는 그림이 됩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위층에 있는 사람은 남자 대학생이다. 그가 쓰고 있는 모자는 크레비즈라는 모자인데, 당시 남자 대학생들이 주로 썼던 것이었다. 그 남자 대학생은 지금 아래층의 젊은 여성에게 흠모의 사연을 담은 편지를 내려 보내는 중이다. 그런데 편지가 가슴에 십자가 목걸이를 건 여성에게 발견됐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그런가하면 이런 해석도 있습니다. “2층의 남자가 내려트린 줄에 아래층의 젊은 여성이 답장 편지를 매달았다. 2층 남자는 그 편지를 서둘러 끌어올리다가, 십자가 목걸이의 나이든 여인에게 들킨 것이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2월 14일 방송>a.
2. 요즘은 <심충 분석>이라는 말을 잘 사용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혹은 겉에 들어난 것만 으로가 아니라, 좀 더 깊은 내면을 살펴본다는 뜻입니다. 이런 심층 분석은 사회 현상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 경제나 정치 현상에 대해서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크게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선교지에서 이런 저런 통신이 옵니다. 수적인 부흥에 비해서 경제적인 면에서는 열악한 경우에 많이 힘들어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눈을 현상에서 의미로, 혹은 목적으로 돌려보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 본문은 드디어 요셉이 그 형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들어냅니다. 그 형들이 팔았던 소년이 절대 권력의 상징이 되어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입니다. 반가움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형들에게 역사를 읽는 깊은 혜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역사의 현상 뒤편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7-8절) 고 말입니다. 며칠 전 병원 심방에서 그리고 전화 상담에서, 그리고 묵상식구 몇 분에게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얘기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들 눈앞의 현상만을 볼 수 있습니다만, 이런 현상들의 뒤편에 서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이유와 사랑도 함께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적으로 막연하거나 희미하지 않은 분명한 그 분의 뜻과 계획이 있으실 테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