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맹세까지 요구한 야곱의 무덤. / 창 47:27-48:7.

박성완 2019. 5. 5. 03:02

묵상자료 3957(2012. 3. 17. 토요일).

시편 135:9-12.

찬송 29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건 사고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말 중의 하나가 홧김에 입니다. 정말 무서운 홧김에지요. 홧김에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으니까요. 우리 속엔 너나 할 것 없이 화가 나면 괴물이 되는 헐크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는 동안 화가 나는 일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화가 나는 일이 생기니까 화를 냅니다. 그런데 화를 내면 속이 시원해지는 게 아니라,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헐크를 들어낸 것 같아, 마음도 괴롭고 뒷목이 뻣뻣해지면서 혈압도 오릅니다. 그러니 화가 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상책인데, 결코 쉽지가 않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국에 에디바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남과 시비가 일어나면, 집과 땅 주위를 세 바퀴 돌았습니다. 왜 집 주위를 도는 걸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서 물었지만, 에디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도 나이가 들고 집도 땅도 넓어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화가 나면 지팡이를 짚고 또 땅을 돌았지요. 이 모습은 본 손자가 화가 나면 왜 땅을 세 바퀴 도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에디바가 이제서야 입을 열어 말해 주었습니다. “젊을 때부터 다툼이 나거나 시비가 생기면, 땅을 돌면서 자책했단다. 내 땅이 이렇게 작은데, 남한테 화내고 싸울 시간이 어디에 있냐고 말이다. 이내 화는 가라앉았고, 온 열정을 일하는데 쏟아 부었단다.” 손자는 이제는 최고의 부자가 되셨는데, 왜 집을 도세요?” 라고 물었고, 그가 답했습니다. “여전히 화가 날 때가 있단다. 내 집이 이렇게 크고 땅도 많은데, 남들과 싸우는 게 무슨 소용인가 하고 말이야.” 에디바는 현명했습니다. 왜냐하면 화라는 것은 90초만 참으면 저절로 식기 때문입니다. 에디바는 세 바퀴를 돌았으니까, 충분히 참은 셈이지요. 우리가 화를 내는 순간, 스트레스 호르몬이 온 몸의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90. 90초가 지나면 저절로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런데도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화가 나는 이유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되짚어보고 원망하고 욕하면서 화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속에 활활 타오르는 화의 정체를 조용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주시하면, 에디바의 일화에서처럼 다 부질없어집니다. 내가 지금 가난하고 힘이 없다면, 화에 쏟을 에너지와 시간을 일에 쏟는 것이 현명하고요. 내가 뜻을 이뤄 힘이 있고 부자라면, 남들에게 베풀어야지 굳이 다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습니다. “화는 바보들의 가슴속에서나 존재한다.” 간디도 왜 화를 낼 필요가 없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고 따끔하게 말했지요. “내가 옳다면 화를 낼 필요가 없고, 내가 틀렸다면 화낼 자격이 없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29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야곱이 애급에 거한 지 17년 째 곧 야곱의 나이 147세에 아들 요셉에게 남긴 유언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47:27-31). 그 내용은 자신의 사후(死後)에 주검을 선영(先塋)에 묻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할머니 사라가 묻힌 헤브론의 막벨라 굴을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에게 그렇게 하겠다는 맹세를 요구합니다. 요셉이 맹세하니까, 야곱은 자신의 침상에서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참고 히 11:21). 야곱의 나그네 생활이 기도와 감사로 마무리 되는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주석가들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유대 나라를 가보면 유난히 무덤들이 잘 보존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을 비롯해서, 베들레헴 길목에 있는 라헬의 무덤, 기드론 골짜기의 압살롬의 무덤과 다윗의 묘실 등 말입니다. 오래된 유럽의 교회들이 대부분 지하실을 묘지로 만들어 두었거나, 교회 앞과 뒤를 묘지로 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아주 인상적으로 본 스위스의 루체른의 어느 교회는 무덤을 지나서 교회당에 들어가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요즘 수목장(樹木葬)이 자주 소개되고 있는 데, 1년에 여의도 땅 크기의 묘지가 생겨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권장되는 것 같습니다. 화장 후 유골을 냇물이나 강 혹은 바다에 뿌리는 것에 대한 또 다른 방법 같기도 합니다. 독일의 한 작은 도시 노이엔데텔샤우의 주택지 한 가운데는 작은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큰 비석앞으로 약 1평쯤 돼 보이는 가족묘가 있었습니다. 수 십 수백 명의 유골을 안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덤은 세상에 살았던 선인들의 흔적(痕迹)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의 소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을 생각하게 하는 방편이기도 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