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 벧전 1:10-20.
묵상자료 3977호(2012. 4. 6. 금요일).
시편 139:15-18.
찬송 20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우리는 일본을 두고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건축가 김석철 교수는 “가깝고도 모르는 나라” 라고 했습니다. [세계 건축기행]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어요. “우리 지식인 중에 자신의 정신을 일본에 점령당하고 있는 사람이 많고, 더 많은 사람들은 일본을 모르고 산다.” 다시 말해서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잃는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한 건축물을 통해서 일본인의 본심과 일본 문화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요. 바로 위해 현에 있는 이새신궁입니다. 일본의 건축가들도 일본적 공동체를 상징하는 건물로 꼽는 곳이지요. 일본에는 신사라는 종교 건축물이 있습니다. 흔히 일본에는 2천이 넘는 토착신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조상신까지 더해지면 일본 인구보다 훨씬 많은 신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고요.
이 신들을 모시는 공간이 바로 신사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하게 사당이 있지만, 유적처럼 과거의 공간이 된 데 비해서, 일본의 신사는 현재도 일본인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많이 다르지요. 신사중에서도 특히 천황 가족의 조상신을 모신 곳을 가리켜 신궁이라고 하는데요. 일본에는 3대 신궁이 있습니다. 도쿄의 <메이지신궁>, 오이타의 <우사신궁>, 위해 현의 <이새신궁>, 이렇게 세 곳인데, 특히 이새신궁은 모든 신사의 중심으로 천황이 직접 참여하는데요. 놀라운 것은 이새신궁이 지어진 것은 기원전 2년, 일본 천황 가문의 선조인 여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명으로 세워졌다는 점입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이새신궁은 나무로 지어진 신궁인데, 목조건물이 2천년이 넘게 멀쩡하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2천년이 넘도록 건재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세계 역사에 유래 없는 <신년 천궁>이라는 전통에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20년에 한 번씩 이새신궁 옆에 똑 같은 건축물을 세웁니다. 똑 같은 그러니까 새로운 이새신궁이 완성되면 이전의 이새신궁은 헐어버리지요. 이런 일을 690년에 처음 시행한 이후 1993년까지, 예순 한 번에 걸쳐서 진행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신궁을 짓는데 사용될 목재는 2백년 계획을 세워서 철저히 관리하는데요. 그러니까 200년 후에 세울 이새신궁의 나무를 올 봄에 심는다는 이야기이지요. 목재가 준비된다고 해서 후다닥 짓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좋은 목재를 골라서 채벌한 후에 지내는 제사만 27차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때까지 걸리는 기간만 무려 8년. 이런 철저하고 완벽한 의식을 통해서, 이새신궁은 2천년이 넘도록 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본인들이 평생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으로, 바로 이 이새신궁을 꼽는다고 하는데요. 글쎄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우리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입니다. 좋게 말하면 의식을 중요시 하는 것이고 꼼꼼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하지만 일본인들 스스로 왜 일본 민족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이새신궁을 꼽는지, 그 이유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3월 2일 방송>
2. 오늘은 성금요일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벧전 1:10-20입니다. 성도의 구별된 삶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이른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선하게 살려고 해서도 안 되지만,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런 시도는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거룩한 모습 혹은 세상과는 구별된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가끔 농담 같기도 하고 비꼬는 말 같기도 한 말을 듣습니다. “목사님 같습니다.”는 말이 그런 경우입니다. 택시를 탔는데 목사님이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탑골 공원에 자리를 깔아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목사가 목사같이 보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세태가 아닙니까? 교사가 교사로 보여야 하고, 판사가 판사로 보여야 하고,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으로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낯설다면, 우리 사회가 한참 꼬일 대로 꼬인 비정상적인 사회라는 뜻일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기독자에게 붙여진 이름이 있었습니다. 성도(聖徒)라는 말입니다.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말씨나 행동만이 아니라, 인생의 가치와 목표가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이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들과는 전혀 다른 것에 온 힘을 쓰는 사람들, 하루하루를 인간 자신의 업적으로가 아니라, 흠도 점도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은 것을 감사하며 그 분의 모습을 닮으려고 힘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말이겠습니다.
3. 오늘 저녁에는 가상칠언(架上七言/십자가위에서 하신 일곱 말씀)을 묵상하는 기도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