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2012. 4. 15. 부활절 둘째주일] 하나님의 섭리. / 행 3:13-15, 17-26.

박성완 2019. 5. 6. 04:41

묵상자료 3986.

시편 141:8-10.

찬송 51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서부터 전해들은 낯모르는 로맨스까지. 또 아이들의 눈에 비친 바깥의 소식들까지, 무성한 소문을 생산하면서, 우리의 하루하루는 이야기와 또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 수많은 스토리 중에서, 햇빛을 받은 이야기는 역사가 되고, 달빛을 받은 이야기는 신화가 된다고 합니다. 마치 햇빛을 받는 일상과 달빛을 받는 로망이 하모니를 이루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성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가 어떤 빛으로 각광을 받을지 기대해 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1234일 방송

 

2.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절에 우리들이 깨닫게 되는 주제 중 하나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 이 있습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이유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증거합니다(13-15).

베드로의 설교는 유대인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의로우신 예수님을 죽이고, 살인자를 살려주는 말도 안 되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하나님께서 역사를 바꿔놓으셨다고 외쳤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설교를 하는 베드로에게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언제나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부족한 듯한 베드로가 어쩌면 이렇게 역사를 크게 보고 그것도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을까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들은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종교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아를 단죄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만, 그들은 전체 인류의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구세주로써 제물이 되시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도록 도운 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조연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큰 틀에서 인생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과 모든 인간을 회개에 초대하십니다(17-19).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인간이 제대로 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경 용어가 회개입니다. 회개는 타종교처럼 구원의 전제 조건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회개는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시인이고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기 때문에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해 주신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혹은 감사로 반응이 바로 회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용서하셨다는 선포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확인하는 것이며, 감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된 삶을 살 특권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제대로 된 삶을 향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라는 뜻이 회개입니다. 죄 된 방향에서 제대로 된 방향을 향해 사는 때문입니다.

 

회개는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입니다(20-26).

며칠 전에 몽골에서 온 편지에는 지난 고난 주간에 금식을 한 9명의 성도들이 100명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왔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전철 안이나 거리를 지나며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소음처럼 외치는 회개하라!”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고 말입니다. 처음 회개하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말하는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뜨라는 외침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제대로 살 수 있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사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일입니다. 중세 기독교는 미움과 증오를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는 이슬람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기독교인이라는 이들이 세상을 증오하는데 앞장을 섭니다.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우리가 보일 참 모습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