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우리가 사모할 복이란. / 마 5:1-10.

박성완 2019. 5. 7. 00:19

묵상자료 4001(2012. 4. 30. 월요일).

시편 145:17-19.

찬송 51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그 아저씨는 평소와 같이 고양이를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제가 매일 아침 산책하는 동네 공원의 풍경 중 하나입니다. 처음, 그 아저씨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셔서 고양이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던져주셨습니다. 그 고양이는 들고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플라스틱 통에 고양이가 좋아할 음식을 가득 담아서 그 앞에 놓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듯 그를 쳐다보면서, 허리 들어올리기도 하고 다리 뻗기 운동을 하십니다. 배부르게 밥을 먹은 고양이는 그 아저씨 곁에 앉아서 입과 얼굴을 씻고는 내리 쬐는 아침 햇살에 눈을 감고 조름에 빠질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가끔 제가 받는 물음 속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꼭두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자료를 보내는 그 정성이 어디에서 나오느냐고 말입니다. 출장 중일 때는 연기 자욱한 PC방을 찾아 가기도 하고, 열악한 선교지에서는 인터넷이 가능한지 여부를 미리 확인해 두는 까닭이 궁금한 모양입니다. 그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너무 기쁘니까요.” 앞서 들고양이의 보호자인 아저씨도 그럴 겁니다. 오늘도 그 불쌍한 들고양이의 삶에 작은 도움을 주었다는 안도감에서 오는 기쁨 같은 것 말입니다. 제 아내가 물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즐거운 일이냐고 말입니다. 12년 전 저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묵상자료 보내기였습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 자신이 너무 기쁘기 때문에 하는 일입니다. 칭찬을 듣고 싶어서도, 상이나 어떤 이익이 생겨서도 아닙니다. 그냥 기뻐서입니다. 들 고양이 아저씨가 흐뭇한 눈으로 그 고양이를 지켜보는 그 기쁜 마음처럼 말입니다.

 

2. 본문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들 중의 하나입니다. 팔복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귀하고 소중한 말씀이 제대로 전해지지도, 들려지지도 않는 현실이 얼마나 슬픈지 모릅니다. 전혀 다른 의미로 둔갑해서 읽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벳새다 광야에서 갈릴리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이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가난뱅이 어부와 농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신 설교였습니다. 이 팔복의 말씀은 그 촌부(村夫)들이 알아듣기에 힘들거나 무거운 상징이나 은유를 담은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바로 내 형편을 아시는 나를 위한 말씀이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가난했고, 슬픈 일들이 많았습니다. 온유했고, 의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벳새다의 무리들뿐이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해서 우리는 그런 복을 다른 주제로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까? 천국은 너무 멀기 때문일까요? 위로(위안)는 실패자의 것인 때문일까요? 의가 가득 찬 세상은 불가능해서 일까요? 하나님을 보는 것이 두려워서 일까요? 그렇습니다. 세상은 지금 제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성공주의와 출세주의의 결과입니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려고 하면, 천국은 멀리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교회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머리말고 꼬리는 되지 말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달라니 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복, 우리가 사모할 복이 무엇인지 천천히 읽으셨으면 합니다. 너무도 분명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복인데 말입니다.

 

3. 지난 4,000회 동안 신통치 않은 저의 묵상을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식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