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하나됨. / 엡 4:1-16.
묵상자료 4024호(2012. 5. 23. 수요일).
시편 3:3-6.
찬송 52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시집,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는 보르헤스가 시력을 잃은 뒤에 펴낸 시집입니다. 그런 만큼 캄캄한 암흑에 대한 절망이나 고통이 절박하게 깃들어 있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조국 아르헨티나에 대한 희망과 사랑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환하고 생생하게 담겨 있기도 합니다. 가령 시집 [브에노스 아이레스 열기]의 맨 앞에 실렸던 <거리>라는 제목의 시도 그렇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들은 어느덧 내 영혼의 고향이라네/ 분주함과 황망함의 넌덜머리나는 격정의 거리들이 아니라/ 나무와 석양으로 온화해진 아라 바래 감미로운 거리/ 불후의 광대무변에 질려 대평원 그리고 참으로 광활한 하늘이 자아내는 가없는 경관으로/ 감히 치닫지 못하는 소박한 집들에 있는/ 자애로운 나무들마저 무심한 한층 외곽의 거리들/ 이런 모든 거리들은 영혼을 탐하는 이들에겐 행복의 약속이라네/ 숱한 삶이 집안에만 은거하기를 거부하며/ 거리의 보호아래 형제애를 나누고/ 우리네 희망이 부풀어진 영웅 같은 의지로 거리를 다니기에” 언제 다시 읽어도 보르헤스의 <거리>에서는, 자애로운 나무들이 무심한 듯 서 있고, 소박한 집들이 있는 나무와 석양으로 온화해진 감미로운 거리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집안에 있기 보다는 그런 거리로 나와, 형제 같은 미소와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느껴집니다. 그런가하면 그 거리 어디쯤에 서 있는 공중전화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 한 동네에서 걸려온 공중전화 때문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4월 3일 방송>a.
2. 지난 4월호 [좋은 생각]에는 “부산을 사랑한 독일인”이라는 제하에, 로마 가톨릭 신부 하 안토니오 몬시뇰님이 소개되었습 니다. 30년 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책에서 그 분의 얘기 중 빠진 것이 있었는데, 신 구교 일치를 위해서 매년 성금요일이면 그 분이 오른 쪽 어깨에 떡메를 걸머지고 부산 시내를 활보했던 일이 있었고, 신교와 구교가 서로 강단을 교류하면서 친교를 나누던 일들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갓 목사가 된 저도 교회 일치를 위한답시고, 부산 동항성당과 서면성당 그리고 분도 수녀원을 자주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가 되는 일, 며칠 전에도 묵상했던 주제입니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큰 틀에서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울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서로 생각과 관심이 달라서 의견이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하고, 그리스도를 세우는 일인가 넘어트리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래 전에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런 어리석은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목사인가? 장로인가? 하는 싸움 말입니다. 예수 그 이름으로 모인 곳이 교회인데, 이런 말이 나오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인간 공로주의, 인간중심주의의 결과물이 아닙니까? 사도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실 때, 모든 교회 구성원들은 서로를 돕고 섬길 수 있는 유기체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를 닮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앞서 소개드린 하 안토니오 신부님의 떡메처럼, 절구 안에 신교와 구교를 집어넣고 내려쳐, 이도저도 아닌 짬뽕을 만드는 하나는 곤란할 것입니다. 개신교 안에서도 그 많은 교파들을 절구 안에서 짬뽕을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참된 하나란 서로 다르면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한 채 함께 어울리는 조화로써의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그런 사랑과 협력과 우정을 그리스도를 안에서 나눌 수 있는, 조화된 하나를 향해야 하겠습니다.
3. 어제 저는 4차례의 비행시간 연장 끝에 자정이 되어서야 항공사에서 마련해 준 인천의 한 호텔에서 머물렀습니다. 몽골 상공에 시속 50킬로미터 이상의 강풍이 분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제 오후에 가까스로 이곳 올란바토르에 닿았습니다. 몽골에서 우리를 기다리느라 고생하신 형제 자매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가방 하나가 도착하지를 않아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교보재와 선물이 들어있는데, 내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미리 보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