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용서하신다. / 마 18:21-35.
묵상자료 4069호(2012. 7. 7. 토요일).
시편 17:13-15.
찬송 44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나몬(Cinnamon), 페퍼, 민트, 라임, 로즈마리, 그리고 월계수 잎. 이제는 우리에게도 아주 낯설지만 않은 이름들입니다. 그 이름들의 공통점은 다 서양의 향신료들이라는 점이지요. 향신료, 한자 이름 그대로 해석하면 향이 나고 매운 맛이 나는 재료입니다. 하지만 우리로 치면 음식 맛을 내기 위해 덧보태지는 양념 모두를 가리키지요.
그런데 요리의 주재료도 아닌 때론 없어도 그만인 이 작고 사소한 듯한 향신료들이, 실은 유럽의 역사를 뒤흔들기도 했습니다. 향신료의 등장이 이렇게 묘사될 정도였지요. “어느 역사학자의 말처럼,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유럽의 식탁 위 풍경은 그야말로 단조로운 흑백이었다. 음식의 맛이라곤 싱겁거나 짜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던 유럽의 식탁이 지금처럼 다채로운 색깔과 그윽한 향기를 지닌 음식들로 가득 찬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아시아산 향신료 의 도입이라는 일대 사건이었다.” 바로 그 아시아산 향신료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제국주의 시절에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은 전쟁을 불사한 겁니다. 당시엔 동남아시아의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의 몰로카 제도에서 향신료가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가는 신항로 개척과 해외 영토 확장에 그토록 열성적이었던 거지요. 그러니 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조로운 식탁을 풍성하게 바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유럽의 향신료 전쟁만큼 분명하게 보여주는 역사도 드물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겨우 후추 맛이나 겨자 맛 하나 때문에 강대국들이 온통 전쟁에 나섰나, 좀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물론 그건 단순히 향신료나 음식의 문제만이 아니라, 향신료에 걸린 엄청난 수입과 부의 관한 문제이기도 했겠지만 말이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5월 9일 방송>a.
2. “인간은 죄를 짓고, 하나님은 용서를 하신다.” 누가 깨달아서 한 말인지는 몰라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깨우침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전적 타락 을 증명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하면 죄의 구덩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죄 가운데서 뒹굴고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도 용서받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흔히 우리는 이런 우리들이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듯 생각하곤 합니다. 오늘 본문도 이런 삐딱한 시각으로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형제가 자신에게 잘못을 했을 때, 몇 번이나 용서해 주면 되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일곱 번까지 하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의 대답은 엄청났습니다.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대답을 듣고 얼마나 놀랐을까요? 단 한 번도 용서하기가 어렵고 어려운 일인데,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성경에서 용서라는 말 헬라어는 아피에미로, “잊어버린다, 지워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서라는 뜻은 다시는 기억도 하지 않고 깨끗이 잊어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용서를 했다고 하면 그 사실 조차 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한번 두 번 헤아리고 있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성품으로 보아서 절대로 용서란 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조문을 넣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은 그 은혜로 용서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힘으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큰 사랑에 겨워서 용서의 대열에 서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는 것이지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