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이 있을 때. / 마 20:29-34.
묵상자료 4075호(2012. 7. 13. 금요일).
시편 18:25-29.
찬송 44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말고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고, 신용카드에 여자 친구의 이름을 적고는, 이어서 “사랑해” 라고 적었던 연인들이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연애와 결혼은 너무나 다른 걸까요? 그렇게 다 안다고 생각하고 다 괜찮다고 생각한 연인들이, 부부라는 이름 아래서는 도무지 모르겠고, 이해하지 못하겠는 점들도 불쑥 불쑥 뛰어나옵니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태엽 감는 새]에 이렇게 쓴 걸까요?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 오랜 시간동안 진지하게 노력을 거듭하면, 상대의 본질에 얼마만큼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우리들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에 관하여, 그에게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법률 사무소의 일을 그만두고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에서였다. 그 때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그런 종류의 의무는 정말로 절실하게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째서일까? 아마도 자신의 생활을 확립하는 작업으로 벅찼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빴기 때문이리라.” 그러면서 주인공인 오카다 도루는 놀랍니다. 아내가 파란색 티슈와 꽃무늬가 그려진 휴지, 그리고 쇠고기와 피망을 함께 넣고 볶는 걸 견딜 수 없이 싫어한다는 걸. 결혼 6년만에야 처음으로 알게 됐기 때문이지요. 함께 산지 6년이 지나도록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고, 느낄 수 도 있었을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은, 꼭 애정과 관심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거나,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누구나 무심해지기 때문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5월 21일 방송>a.
2. 오랫동안 신문을 오려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제는 보관이 문제가 되어서 포기해 버렸습니다. 참 좋은 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글들을 오리면서 우리나라에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며 힘을 얻곤 합니다. 며칠 전 신문에는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물론 오려 두었지요.“사람이 여느 동물과 다른 점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요즘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하나는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자를 보호하는 마음이다. 동물은 부끄러움을 모르니 아무 데서나 ‘그 짓’을 하고,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보기만 하면 잡아먹는다.” 인간이 짐승의 수준에 와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본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등장인물은 여리고 도상의 두 소경과 많은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입니다. 여기에서 두 소경은 물론 이름 없는 무리들 역시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약자들이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입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해 줄 수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큰 고통과 아픔을 주는 사람들이 그런 비슷한 처지의 이웃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1992년 4월 29일 소위 로스앤젤레스흑인 폭동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흑백 갈등을 불러온 <로드니 킹 사건> 재판이 한국 이민자 상점 약탈로 번져, 55명이 죽고 2,300여명이 부상하고 7억 2천여만 달러의 손해를 가져온 사건 말입니다. 흑인들의 눈에는 백인보다 황인종인 한국이민자가 더 미워진 것입니다. 강자에게는 아첨하고, 약자에게는 거들먹거리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그런 마음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경에서는 긍휼이라는 단어로 쓰이기도 합니다만, 이런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족을 바라보고, 이웃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겠다고 말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지셨던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민망이 여기사”라는 번역은 공동번역에서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라고 번역했는데, 잘 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측은지심(惻隱至心)은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는 두 가지 중 한 속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불쌍히 여길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때문입니다.
3. 오늘 오전 강의를 끝나면 저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는 21-22일에는 전교인 하기 수련회가 있을 예정이고, 8월 5-10일에는 베트남의 한 신학교에서 <해석학 특강>을 사흘간 강의할 예정입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