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윤리적 욕망을 길들여야 할 이유. / 마 21:33-46.

박성완 2019. 5. 10. 00:04

묵상자료 4080(2012. 7. 18. 수요일).

시편 19:1-6.

찬송 22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기억을 신뢰합니다. 과거의 수많은 일들을 채로 걸러서 남은 결정체니 만큼, 그만큼 이유와 가치가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요. 하지만 줄리안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는 이런 구절로 시작합니다.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 같지는 않은 법이다.” 주인공 토니는 평균치의 인생, 평균치의 진실 평균치의 윤리관을 가지고, 평균치의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행복할 것도 불행할 것도 없는 그에게, 어느 날 유언장이 날아듭니다. 바로 40년 전 대학시절의 여자 친구였던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포드 부인이 보낸 거였지요. 그녀는 500파운드와 함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유품으로 남겼는데, 에이드리언은 토니의 친구였지만, 베로니카를 빼앗아간 연적이었습니다. 토니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사라포드 부인이 왜 자신에게 500파운드를 유산으로 보냈는지, 딸의 애인이었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왜 그녀가 가지고 있었는지, 토니는 기억이라는 단서를 가지고, 40년 전의 진실을 추적합니다. 하지만 번번이 어긋나지요. 왜냐하면 애초에 그 기억이라는 단서가 잘못돼 있었거든요.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진실 앞에 토니는 매우 놀라고, 평균치의 인간에서 비극적인 인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기억이란 대부분 피해자로써의 기억입니다. 가해자일 때의 기억은 대개 우리 자신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으니까,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곤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기억을 선택하고 편집하며 창조합니다. 토니는 깨닫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란, 가감하고 윤색하며 교묘하게 가지를 쳐내는 일임을.”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하지요.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 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문득 요, “우리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라는 영화 카피가 생각납니다. 첫사랑이라고 하면 피해자로써의 기억이 먼저 떠오르기 쉽지요. 하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 또한 가해자였을지 모릅니다. 단지 잊어버렸을 뿐.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51일 방송>

 

2. 이상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얘기하면서도 뒤로는 막강한 군사력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성이 만들어내는 가공할 파괴력입니다. 세계를 수백 번 파괴할 수 있는 원자탄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화로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그 인간성으로 인해서, 그 가공할 원자탄은 언제든 터질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런 위험한 사람들이 실존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창작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농부들은 인간 욕망의 끝이 어디까지인가를 여실히 대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주인의 일터에서 일할 수 있는 것으로 감사했고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욕망은 주인을 죽이고 주인의 전 재산을 자신들이 차지하는 것으로 발전했습니다이렇듯 문제의 핵심은 통제할 수 없이 커가는 인간의 욕망에 있었습니다. 욕망, 그것은 삶을 역동적이게 하는 마력일 수도, 파괴하는 괴력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든 이 욕망에 빠지기만 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독성에 길들어 버리는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철인들은 이 욕망을 바르게 길들이는데 관심을 쏟았던 것입니다. 이른바 윤리적 욕망을 가지라고 말입니다. 엊그제 <무한 리필 숭어 횟집>이 소개되었습니다. 한 고객은 부끄러움 없이 말했습니다. 10인분의 식사를 했다고 말입니다. 위의 70% 정도로 만족하는 돼지가 인간을 보고 탐욕에 빠져 죽어가는 존재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배운 사람은 못 배운 사람을 가르쳐주고 싶어 하고,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을 나눠주고 싶어 하는 윤리적 욕망의 나라,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