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우주적 파국에 맞설 자는 없습니다. / 마 24:15-31.

박성완 2019. 5. 10. 00:16

묵상자료 4089(2012. 7. 27. 금요일).

시편 21:11-13.

찬송 16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7세기 조선의 시인가운데 김득신이라는 문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둔재라며 놀림을 받고 자랐습니다.

남보다 글이나 문장을 이해하는 속도가 유난히 느렸던 거지요. 하지만 그 점을 깨달은 그는 책 한 권을 만 번씩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만 번이라니. 본인이 책을 줄줄이 외웠으리라는 것은 안 보고 안 들었어도 쉽게 짐작할 수 있지요. 그런데 김득신 자신만이 아닙니다하도 듣다 보니 그의 하인들조차 책 속에 나오는 어려운 한문 구절들을 뜻은 모르더라도 줄줄이 외울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때로 그가 어떤 구절을 건너뛰면, 그걸 알고 이야기해 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피나는 반복 읽기와 소리 내어 읽기로, 김득신은 장차 둔재 소리 대신 당대 최고의 시인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김득신은 스스로 지어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쓰기도 했지요. “재주가 남만 못한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531일 방송>a.

 

2. 제가 종말을 이야기할 때는 이른바 <개인적인 종말><우주적인 종말>을 구별해서 이야기합니다. 개인적인 종말은 죽음과 함께 오는 것임으로 항상 마지막 순간처럼 살아야 까닭이고, 우주적 종말이란 온 세상이 파국을 맞는 것임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에 달린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주적 종말을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날이 왔을 때, 지붕위에 있는 자는 물건을 가지려 집안으로 가지 말라 던지, 밭에 있는 자는 자기 겉옷을 가지러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 그리고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들입니다(17-19). 물론 우리들은 그 우주적 파국을 만날 확률은 적다고 하겠습니다만우주적 종말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주적 파국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 끔찍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떤 행동도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우주적 파국은 몸이 무거운 사람들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음 같지 않게 몇 걸음 옮겨보긴 하지만, 그 무서운 파국에 휩싸이고 말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작년 3월에 있었던 일본에 밀어닥친 쓰나미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심지어 배에 탄 사람들까지도 속수무책으로 그 거센 물결에 파묻혀 버리는 그 엄청난 위력을 말입니다. 우리들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주적 파국,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누구도 그 파국에 맞설 수는 없는 마지막 날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