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법관이 그리운 시대. / 마 27:11-23.
묵상자료 4104호(2012. 8. 11. 토요일).
시편 25:4-6.
찬송 43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눈으로 뭘 보든, 머릿속으로는 온통 다른 생각입니다. 특히 학창시절 수업시간이나 조회시간에 많이 그랬지요. 책을 펼쳤지만 눈으로만 글자를 읽을 뿐, 머릿속은 책 내용과 상관없는 공상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비스타프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 속의 그녀는, 밤에 생선장수들이 짐수레를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창문 밑을 지날 때마다 공상에 빠졌습니다. 점점 사라지는 쇠바퀴 소리에 귀 기우리면서, “저 사람들은 내일이면 파리에 도착하겠군.” 하고 생각했지요. 생각은 공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녀는 공상 속에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언덕을 올라갔다가는 다시 내려가고, 마을과 마을을 지나고 별빛이 반짝이는 가도를 달려갔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거리를 지나고 나면, 언제나 어렴풋한 어느 곳에서 그녀의 꿈이 다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파리의 지도를 샀다. 그리고 지도위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면서, 수도의 이곳저곳을 두루 가보았다. 큰 거리를 따라 올라가보고, 거리 모퉁이 마다 길과 길을 나타내는 선들의 사이, 집을 나타내는 흰색 네모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결국은 피로해져서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 몇 개의 가스등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극장 전면에 기둥들이 늘어선 회랑 앞에서, 사륜마차의 발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내려서는 것이 보였다.” [보바리 부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도 그녀처럼 똑 같이 그랬던 경험이 있습니다. 가고 싶은 도시의 지도를 사서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거리를 마음껏 누비며 구경하지요. 어쩌면 누군가는 공상에 불과하다고, 잡념으로 귀중한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할지 모르지만요. 은희경 작가는 잡념이 많은 사람들의 편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거 아세요? 잡념이 많기 때문에 지루함을 별로 모른다는 것, 잡념은 장거리 여행이나 긴 강연을 들을 때, 심지어 달리기를 할 때에도 도움이 된 답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탈 때도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대부분 잡념과 그리고 단순히 주변을 관심 있게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지요.” 참 그러고 보니까 멍하니 공상에 빠졌던 적도 꽤나 오래 전 일 같습니다. 공상의 나라로 여행을 가는 데 있어서 돈도 안 들지만, 감수성과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탓일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5월 17일 방송>
2. 빌라도 총독앞에 서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로마법>은 예수님 당시나 그 전이나 그리고 지금이나 세계적으로 가장 선진화된 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상식을 떠올리면서 빌라도의 법정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상식을 여지없이 무너트리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빌라도의 얌심이 법정 안의 분위기에 압도 당해서 흔들려도 너무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관이 법의 정신에 충실해서 법리를 따르려고 힘써야 하는데, 이른바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방향으로 꼬리를 내려버렸으니 말입니다. 요즘 정치검찰이라는 얘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정치가는 권모술수를 묵인받는 유일한 인물들입니다. 아예 내놓은 자식 수준의 인물을 정치가라고 부릅니다. 경건한 종교인이라면, 정치가가 되어서는 안될 이유이기도 합니다. 빌라도는 법관이 아니라 정치가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법리를 지킬 양심이라곤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정치가였다는 뜻 말입니다.
슬프게도 우리 주님은 제대로 된 법 앞에 서 보지도 못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이해득실에 따라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정치가들에 신물이 났을지라도,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제대로 말해주는 법관을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희망사항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기대를 걸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지금 땅에서 제 입맛대로 심판을 자행하는 자칭 경건주의자들을 떠올려 봅니다. 과연 그들이 지금처럼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서도 그럴 수가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동시에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인 사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만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주님의 변호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3. 오늘 장충교회당에서 몽골 잘로스 자르갈 형제가 장가를 갑니다. 총신대에 재학중인 형제는 앞으로 몽골 교회를 위해서 귀한 재목이 될 것입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