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구하고 자신은 버린 주님. / 마 24:32-44.
묵상자료 4107호(2012. 8. 14. 화요일).
시편 25:15-19.
찬송 49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풍족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도, 무조건 늘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일본의 나라 현에는 사슴들이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다니는 사슴 농원이 있습니다. 사람과 차가 오가는 도로와 인도 옆의 잔디밭으로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는가하면, 다가가서 털을 쓰다듬어도, 쓰다듬는 쪽의 조심스러움이 무색할 정도로 사슴은 가만히 있습니다. 상점에서 파는 사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주면, 어린아이들처럼 좋아서 받아먹지요. 그러다 못해 더 달라고 때를 쓰든 듯이 다가들거나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그 모습이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합니다. 사슴들 사이를 누비며 먹이를 주며 쓰다듬고 예뻐하게 되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지나친 사랑 때문에, 오히려 사슴들이 갖는 특유의 겁이나 경계심이 너무 없는 듯해서입니다. 사슴이 아니라 지나치게 잘 훈련되고 적응된, 그래서 심지어 나른하고 너무 늘어져 보이는 낯선 동물들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랑을 너무 과하게 받기만 하는 것도 부작용이 없지 않은 거겠지요. 그러니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이 바라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기를, 새삼 바라보게도 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6월 8일 방송>b.
2.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라고 부릅니다. 그 십자가의 길에는 우리 주님께서 빌라도에게 사형판결을 받으신 자리를 시작으로 죽으신 자리까지 14곳에 십자가 표지를 세워져 있습니다. 주님이 세 번 넘어지신 자리는 세 번째와 일곱 번째 그리고 아홉 번째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다섯 번째 자리가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넘겨주신 곳입니다. 물론 이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렇게 해 둔 것입니다만, 그 자체를 신앙하지 않는 한 신앙생활을 풍부하게 해 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들레헴을 여행하지만, 주님이 이곳 어딘가에서 태어나셨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서, 주님의 탄생교회를 방문하고서 머리를 숙여서 들어가야 하는 역사적 전통과, 큰 별로 탄생 자리를 꾸며 놓은 곳을 살피면서 주님의 탄생을 묵상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실제적인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은 어찌된 사연으로 십자가를 따랐는지는 몰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져 주는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비록 그는 그 십자가를 억지로 짊어졌지만 말입니다. 십자가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붙어 있습니다. 고소인 대제사장들과 빌라도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던 죄패였습니다만, 결국 죄패는 주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아래에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 등은 물론 군졸들과 지나가는 행인들까지 합세해서 자신들의 왕이라 명명된 예수님을 조롱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면서 말입니다. 비웃는 말로 하였습니다만, 그들은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을 구원하였으되”, 남을 구원하신 사실을 그들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 모습을 그들은 또렷이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구절에서 저는 주님의 우리를 향하신 참 사랑, 참 구원의 의지를 깨닫고 있습니다.
3. 어제부터 이곳 루터대학교에 와 있습니다. 오늘 오후까지 회의가 있으며, 저녁에는 아산에서 몇 분 목사님과 선교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