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12. 8. 26. 성령강림절후 열셋째주일] 성경은 성경으로. / 요 6:51-58.

박성완 2019. 5. 11. 03:38

묵상자료 4119.

시편 29:3-6.

찬송 23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에 글을 모르는 새 신랑이 군대를 갔습니다새색시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데, 글을 모르니까 당연히 그림을 그렸겠지요. 새신랑이 보낸 그림 편지에는굴뚝하고 새가 그려져 있었습니다글쎄요무슨 뜻일까요?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데갈 새가 없다는 그런 뜻이었다고 합니다. 강분석의 [지금 이곳에서 행복하기라는 책에 실린 옛날 얘기 한 토막을 먼저 전해드렸는데요. 이런 그림 편지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어야 하겠지요. 화려한 말과 글에 묻힌 글보다는빨리 쉽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지금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 새신랑처럼 그림 편지를 보낸다면, 여러분은 어떤 그림에 그 마음을 담을까요? <KBS FM 1, 풍류마을 2012531일 방송>

 

2. 주후 140년경에 나온 순교자 저스틴의 <변증서1>는 초대교회의 예배모습을 소개합니다. 말씀의 예배에 이어서 성찬 예배를 문을 잠그고 드렸는데, 그 때 안에서 이 살을 먹으라. 이 피를 마셔라는 소리 때문에, 초대교회는 사람의 살과 피를 먹는 무리들로 오해를 받아 박해를 당했습니다. 성경말씀은 성경말씀으로 해석해야 할 이유입니다.

 

성경말씀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12:1-28).

성경말씀은 공자의 말씀이나 불경처럼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배경을 모른다면 정말 오해할 수밖에 없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에서는 이 떡을 먹으라. 내 몸이라. 이 잔을 마시라, 너희를 위한 내 피니라.”고 하면서 성찬식을 행합니다. 이른바 유월절 식탁의 역사적 사실과, 그것을 해석하신 예수님의 성찬제정의 말씀(26:26-28)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곡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정신이나 우리들 상식과 동떨어진 내용일 때는 반드시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일부다처제를 소개하는 유대 조상들의 일화들이나, 수혼법과 같은 낯선 이야기들은 아랍세계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약속과 성취라는 이해로 살필 이유도 그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풀려고 할 때, 비로소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엔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십니다(51, 53-56).

성경의 분량이 방대하고 다양한 주제를 취급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이해한다면, 쉽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둘 때만 자연스럽게 연결 지을 수 있습니다. 루터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대표적인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매일의 양식으로 살아가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매일의 양식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을 수 있습니다(6:25-32).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가르치셨고(4:4). 마침내 당신 자신이 생명의 양식임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린 것처럼,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모든 인생들을 죄와 죽음에서 구해내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성만찬을 통해서 생명의 양식은 현재화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현존인 말씀입니다(57-58).

어느 시대나 교회를 흔드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사람의 몸을 입은 기독론적 예수님을 찾아냈습니다. 중세에는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인가? 아니면 인간의 행위인가로 흔들었습니다그러나 성경에서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모두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흔드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가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도마의 복음서><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 등의 책들로, 성경을 불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과학적 지식과 비교하려고 하거나, 인간 사이의 윤리와 견주려고 합니다. 모두 다 어리석은 바보짓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지성과 논리에 만족을 주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도록 요구하는 신앙의 말씀인 때문입니다. 지난 2천년동안 성경은 하나님을 만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누리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