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길과 죽는 길. / 요 8:21-30.
묵상자료 4141호(2012. 9. 17. 월요일).
시편 34:9-14.
찬송 33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옆에 앉으신 초로의 아주머니가 휴대전화로 능숙하게 문자를 보내고 계십니다. 잠깐 흘깃 보니까요,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어디어디에서 서비스 포인트를 쓰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소리니?” 아마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또 자녀는 자녀들대로 많이 공감하실 겁니다. 문자를 보내는 방법은 배우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또 문자로 자꾸만 들어오는 내용이 당최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부모나 자녀의 통화나 대화의 내용을 들어보면요, 이런 식으로 새로운 기계의 사용법이나, 새로운 문화의 활용법에 대한 질문과 응답이 상당부분을 차지합니다. 디지털 도어 락을 단 후로 “얘, 번호 잘못 눌렀더니 계속 소리가 난다?” 전화를 하시고. 또 리모컨으로 끄고 켤 수 있는 전등을 다신 후에는, “불 끄고 자야 되는데, 불을 끌 수가 없네. 어떻게 하면 좋으니?” 이렇게 물으시고. 새로 산 디지털 텔레비전인데 화면이 옛날 것만 못하다는, 알 수 없는 얘기도 하십니다. 여기에 휴대전화와 컴퓨터는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자꾸 나타나는 미스터리이지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빨리빨리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지 못하고 더듬거리시는 모습이, 시대의 흐름에 자꾸 밀려나는 것 같아서 좀 쓸쓸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많은 정보와 지식을 빠른 속도로 습득하기 위해 애쓰면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시대에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일침을 놓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선비가 배에 올라서 사공에게 물었지요. “자네 글을 지을 줄 아는가?” “모릅니다.” “그럼 세상사는 맛을 모르는구먼. 그러면 공맹의 가르침은 아는가?” “모릅니다.” “저런, 인간의 도리를 모르고 사는구먼. 그럼 글을 읽을 줄은 아닌가?” “아닙니다. 저는 까막눈입니다.” “원 세상에, 그럼 자네는 왜 사는가?” 바로 이 때 배가 암초에 부딪혔습니다. 배가 곧 가라앉게 생겼지요. 사공이 선비에게 물었습니다. “선비님, 헤엄치실 줄 아십니까?” “아니 나는 헤엄칠 줄은 모르네.” “그럼 선비님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선비가 사공에게 물었던 질문들은 한 가지. 너는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공이 선비에게 물었던 것은 정작 살아남는 방법. 인생의 지혜였지요. 지식을 자랑하던 선비는 지혜가 없어서 고초를 겪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넘치게 보는 경우지요. 새로운 기기와 지식이 수없이 쏟아지고 아무리 그걸 잘 익혀서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고 해도 그 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지요. 아무래도요, 지혜를 얻는 방법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디지털 정보에 어두운 인생의 선비들이, 아날로그적으로 천천히 들려주는 바로 그 이야기들 속에 들어 있을 지도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6월 28일 방송>
2.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두고 흔히 선문답(禪問答) 같다고 말합니다. 현실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에서나 통하는 말인 때문일 것입니다. 죄인의 세계와 의인의 세계가 그런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주는 것일지 모릅니다. 주님은 심판에 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에 앞서 일어나게 될 일들, 곧 당신이 참여하실 십자가와 부활 사건 후에 진행될 일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주님이 가실 천국과 인간들이 가게 될 지옥은 전혀 다른 세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질문을 하게 되었고, 가장 중요한 진리 앞에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 죽으리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은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는 선언을 분명히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서 죽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누구 한 사람도 죄 가운데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아드님을 세상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셨고, 이 진리를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받아주시는 구원의 길을 만드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과 함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이 간절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은혜 아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지, 선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야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점에서 기독교와 타종교가 갈라서는 갈림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만이 새롭게 살 수 있다고 말입니다. 성화를 강조하는 분들이 항상 기억해야 할 내용입니다. 새 사람만이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오, 주님! 나를 새롭게 하소서.
3. 태풍 <산바>를 잘 이겨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