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목적을 이루는 수단을 생각함. / 요 9:1-17.

박성완 2019. 5. 12. 02:04

묵상자료 4144(2012. 9. 20. 목요일).

시편 35:1-3.

찬송 8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누라라고 하면, 남성이 자신의 아내를 허물없이 부르는 호칭이지요. 듣기에 따라서 여편네와 비슷하게 얕잡아 부르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마누라의 어원은 마노라, 고려 후기에 몽골에서 들어온 말로, 놀랍게도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됐던 극존칭이었습니다.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의 일가를 존칭할 때 마누라를 붙여서 대비 마누라 대전 마누라라고 불렀지요. 우리가 흔히 부르는 마마와 함께 쓰였던 궁중 용어였습니다. 이렇듯 왕실의 일가를 일컫는 극존칭이 아내를 조금 낮춰 부르는 뜻으로 전락한 건 최근 100년 사이의 일이라고 해요. 또 마누라와 비슷하게 그 뜻이 전락한 단어로 영감이 있는데요. 원래는 정 3품과 종 2품의 당상관을 높여 부르던 말이었지요.

   또 당상관 이상일 때는 대감이라고 불렀고요. 그러면 왜 벼슬아치를 호칭하던 말이 늙은 남편이나 왜 늙은 남성을 일컫는 말이 됐을까요? 평균 수명이 40세 이었던 조선시대에 오래 산다는 것은 참 큰 복이었지요. 그래서 조선 중기에는, 80세 이상 노인들에게 벼슬을 내려주었는데, 이 벼슬을 받은 노인들을 사람들은 영감이라고 높여 불렀다고 합니다. 마누라와 영감 영감과 마누라, 요즘에는 썩 기분 좋은 호칭은 아닌데요. 하지만 원래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에야 부르는 사람도 불리는 사람도 대부분 그 고귀함을 모르고 사용하겠지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72일 방송>

 

2. 끝도 없이 되풀이 되는 문제들 중의 하나는 목적과 수단의 혼동이라고 하겠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목적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불행한 사람을 눈뜨게 하신 기적 일화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불거집니다. 하나는 이 소경된 사람의 불행이 부모의 죄 때문인지 자신의 죄 때문인지를 제자들이 물었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필이면 또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했다는 점을 들어서 시비를 걸어온 바리새인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어둠에서 광명을 찾은 소경된 사람의 엄청난 삶을 축하하고 기뻐하기는커녕, 소경으로 태어난 원인을 캐묻는 그 마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일화는 함께 기뻐할 일이지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명쾌하게 대답하십니다. 누구의 죄 때문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앞으로 우리들의 삶에서도 이렇듯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함이라는 고백이 많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매번 신경을 써야 하는 대목입니다만, 안식일에 병을 고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시비는, 목적과 수단이라는 차원에서 대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의 행복을 목적으로 한 규범이라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