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우리 인생 길을 앞서 가시는 목자, 예수 그리스도. / 요 10:1-18.

박성완 2019. 5. 12. 02:07

묵상자료 4146(2012. 9. 22. 토요일).

시편 35:9-13.

찬송 44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건망증으로 인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 한 가지를 알려드리자면요, 생각났을 때 바로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욕실의 수건을 새 걸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났을 때, 그 때 바로 바꿉니다. 각종 공과금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났을 때, 바로 냅니다. 또 무엇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바로 알아봐서 바로 전해줍니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할 때도, 말이 나왔을 때 바로 정합니다. 다음으로 미루면 잊어버리기 때문이지요. 뒤로 미루는 일을 가급적 줄이려고 애를 쓰면서 깨달은 사실은요, 조금 있다가 다음에 하는 식으로, 자꾸만 뒤로 미루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미루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사랑입니다. 자식은 부모님에게 말합니다. “이 다음에 제가 꼭 효도할게요.” 또 남편은 아내를 향해서 속엣 다짐을 합니다. “내가 나중에 더 잘 해 줄게.” 물론 진심이겠지만 현명한 계획도 올바른 사랑법도 아닙니다.

   톨스토이가 말했지요. “미래의 사랑이라 하는 것은 없다. 사랑은 언제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활동이다. 사랑을 지금 보여주지 않는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이다.” 정채봉 작가는 이 말에 이런 주석을 달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일에 좀 더 보태어서 명주 한필을 사들고 오겠다는 그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 오늘 당장 있는 그대로 무명 한필을 싸들고 오는 사람이 아름답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좀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더 많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사실은 지금 이미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타야마 교이치의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아키가 했던 말이 참 좋습니다. “, 말이야. 지금 내 안에 모두 있다고 생각해. 모두 있고,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아. 그러니까 부족한 것을 신께 빌거나 저 세상이나 천국에 바랄 필요는 없어. 그걸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소설 속 아키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소녀였지요. 과거나 미래는 내 것이 아니지만요, 바로 지금은 내 것입니다. 그러니 할 일이 생각날 때,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또 누군가에게 잘해주고 싶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을 때, 부족한 것을 더 채워야 할 때,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더 하시길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917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전형적인 계시의 복음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다.”(7-10) “나는 선한 목자라.”(11-18) 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신 자신이 진리의 문이고 생명의 문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진리에도 생명에도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인생이 찾아야 할 많은 문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단 하나 뿐인 진리의 문, 그리고 생명의 문이라는 점에서 자연히 배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유대의 모든 관원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 등이 모인 앞에서 했던 증언,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4:12)우리가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8) 라는 말씀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단락인 선한 목자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자기 증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두고두고 곱씹어 보아야 할 주제입니다. 목자란 양의 생명과 행복을 책임지는 존재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목자와 양의 관계는 매우 특별한 관계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이라는 존재가 목자의 도움이 없이는 자기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점을 생각할 때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자 없는 양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겠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들 인간을 양으로, 그리고 주님을 목자로 비유할 때 너무나도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들 인간이란 스스로는 대단한 존재로 여기면서도 실제로는 사는 길과 죽는 길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양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일생 계획을 세우고, 또한 하루하루를 계획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죽음의 골자기를 지나가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실존을 생각할 때, 인간은 연약하고 어리석은 양에 불과하다는 깨달음 말입니다. 그런데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한 떼의 양무리를 만났을 때, 비록 메마른 광야 길을 투벅투벅 걸어가고는 있지만, 목자의 뒤를 따르고 있는 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향하고 있다는 소망의 얼굴을 한 행복한 양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나의 인생길을 앞서 가시며 인도하시는 목자, 우리 주님의 이미지가 그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