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비교의 대상 : 가난한 사람들과 예수님. / 요 11:55-12:8.

박성완 2019. 5. 12. 02:20

묵상자료 4155(2012. 10. 1. 월요일).

시편 37:5-8.

찬송 10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 지명 수배자, 미국 서부 영화에서 종종 보는 포스터입니다. 그 수배자가 때론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당일 수도 있고, 때론 악당 보안관의 눈엣가시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눈엣가시가 되어 숨죽여 피신해야 했습니다(11:54-57). 그런 주님이 베다니에 나타나셨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노중이었습니다. 베다니는 나사로가 나흘 만에 살아난 곳으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나사로의 삼남매에게는 주님께 보은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잔치가 마련되었고(12:2), 오라버니를 살려주신 것을 감사하는 마리아의 향유 옥합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 부어진 것입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습니다. 향유가 낭비되었다고 하는 사람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분노하기까지 했습니다.(12:4-8) 마치 오랫동안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돕고 구제했던 자선가처럼 말입니다. 그는 위선자였습니다. 말로만 떠들 뿐 실제로는 가난한 자들에게 냉담해 왔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주님 가장 가까이에서 따랐던 제자라고 하니, 그런 피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흐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한 유명 목사님이 하신 설교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크게 성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서, 먼저 성장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성장의 목적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그럴 듯한 얘기입니까? 그런데 그런 주장은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나 통하는 얘기 아닙니까? 며칠 전 <경제 민주화>를 주창하는 한 지도자의 특강을 감명 깊게 시청했습니다. 그 분은 한국의 1%의 부자들이 얼마나 깊은 탐욕에 빠져 있는지를 성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탐욕을 더욱 키워주는데 무능한 정부가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강력한 정부론이 골자였습니다. 성공하고 출세하면 사람 구실을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구실을 해야 참된 성공에 이르는 것인 때문입니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 정부가 아니라, 오히려 백성이 주인 노릇하는 정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님의 위상이 어떤 정도인지 가늠해 볼 시간입니다. 그 분이 거지들 몇 사람과 맞먹는 가치인지, 아니면 온 세상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게인지 말입니다. 신앙의 대상을 그처럼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3. 추석 연휴 마지막 날입니다. 저는 오늘 도봉산행을 단독으로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응봉산과 매봉산을 아우르는 매일 1시간짜리 연습을 해왔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