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 히 18:1-11.
묵상자료 4162호(2012. 10. 8. 월요일).
시편 37:38-40.
찬송 5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운전을 시작한지 한 달이 채 안 됩니다. 한 달이면 충분히 적응될 만 하다고도 하지만, 여전히 어렵고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운전을 하면 특히 여성들의 경우 다른 운전자들로부터 거친 말도 많이 듣지요. 하지만 무언의 친절과 배려를 받을 때도 많습니다. 그런 친절은 보통 때의 친절보다 몇 배나 더 고맙게 느껴지지요. 자동차란 잘못하면 사람을 다치게 하니, 초보자에 대한 친절이야말로 사고를 막는 일이니까요.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밤늦게 잔뜩 긴장을 하면서 운전을 할 때였습니다. 긴장이 너무 지나쳤던 걸까요? 두 개의 차선이 하나로 좁아지는 도로에서, 그만 끼어들 틈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좁아드는 차선 한쪽 옆에 멈춰선 채, 우회전 깜빡이만 켜고 있었지요. 늦은 밤 시간이라선지 차 불빛은 정신없이 치달려오고, 이제는 바로 뒤쪽에서도 연신 재촉의 경적소리가 들여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언제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막막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너무 바보스럽고 미안했습니다. 초보 운전이라는 글자가 보일 텐데도, 뒤에서 크게 경적을 울려대는 차가 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옆 차선에서 오던 차가 멈춰서며 불빛을 깜빡였습니다. 끼어들라는 배려의 신호가 분명했습니다. 얼른 들어가니 비로소 살 것 같았습니다. 한 손을 흔들며 감사의 뜻을 보냈습니다. 밤이라서 잘 보이지도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그것만큼은 전혀 초보가 아닌 듯, 오래 오래 손을 흔들었습니다. 다들 야박하고 정신없는 것 같지만, 이런 믿음직하고 관대한 사람이 있어서, 당황하여 쩔쩔매는 한 사람은 밤길에 무사히 운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8월 1일 방송>a.
2. 젊은 날에 저 역시도 자급목회라는 것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다닐 때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복음 전도자가 되겠다며 교직과목을 이수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두 번씩이나 찾아왔습니다. 한번은 저의 멘토 전영창님이 거창고등학교의 교사로 불렀을 때이고, 다른 한번은 부산의 한 교육재벌이 교사로 불렀을 때입니다. 그 때 참 행복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둘을 잘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목회에만 전념하기로 했는데, 그런데 결국 훈장 생활을 25년간이나 겸하는 운명(?)에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굴라 부부와 바울 사도가 장막을 만드는 직업인으로써 등장합니다. 그들은 훌륭한 직업인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전도자였습니다. 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어느 하나도 훌륭하기는커녕 어쭙잖은 돌팔이에 머물렀었다는 자책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즐거워졌습니다. 설교단으로 오르는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깨달은 그대로 나누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 그 분에게 초점을 맞추기로 하니까, 말씀이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철부지들을 앞에 앉혀놓고 복음을 얘기하는 게 의미가 생기고 기뻐진 것입니다. 그 어린 것들의 미래가 훌륭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큰 바위 얼굴>에 나오는 어니스트처럼, 그 분을 닮아 가자는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이렇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고 알아들을 수 있게 전하는 이 길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이렇게 나누는 복음이 맛깔스러워지고, 마음 따뜻하게 하고 소망을 북돋울 것이라고 희망하면서 말입니다.
3. 어젯밤은 아산 집에서 묵었습니다. 텃밭의 배추나 무는 주인 없이도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