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설교를 듣는 기분. / 행 20:17-38.
묵상자료 4169호(2012. 10. 15. 월요일).
시편 39:1-5.
찬송 25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긍정이라는 단어와 가능성이라는 단어는, 현대인들이 갖거나 기댈 수 있는 가장 좋은 위대한 단어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 두 단어가 있어서 누구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설레임을 가질 수 있었지요. 하지만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책 [피로사회]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설명합니다. [피로 사회]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 병철 교수가 쓴 책이지요. 한국인이 독일어로 쓴 책이자, 철학책으로써는 극히 드물게 독일의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올해 다시 한국어로 번역돼 출간됐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은, 제목 그대로 지금 우리들이 심한 피로사회를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배경에 뜻밖에도 긍정과 가능성이라는 단어들이 있다는 겁니다. 가령 현대 이전까지 서양 사회에서 인간을 지배해 온 건, 금지 규율 의무 억제 같은 부정적인 성향의 관념들이었지요. 그러다 현대로 오면서 개인적인 능력이나 성과, 자기 주도적인 삶 같은 걸 인정해 주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단어들이 흔해졌습니다.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1인 기업가일 수 있다고 모두가 부추 켰습니다. 그러다보니 혹은 그러기 위해서, 갈수록 내가 어떤 성과를 얼마나 거뒀는지, 나에 비해 누구는 또 얼마나 더 낫거나 못한 성과를 거뒀는지. 매사에 성과만능주의자들 성과 비교주의자들이 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이전시대와는 달리, 자기 자신을 더 많이 갈고 질투시키고 몰아대느라 갈수록 모두가 다 더 피로해 지고, 그 정도 이상의 피로감 때문에 기운이 다해가는 탈진과 소진의 느낌에 휘둘리는, 소진증후군도 늘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를 낙오자로 느끼는 우울증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게, 화제의 책인 [피로 사회]의 진단입니다. 루저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도 괜한 게 아니었던 거겠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7월 25일 방송>a.
2.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말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분명 마지막 말을 하면서도 그게 마지막 말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그냥 해버리고 말아서, 끝내 변명도 고쳐 말하지도 못하고 말지 모르겠습니다. 사도는 에베소에 있는 형제들에게 마직막 설교를 할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설교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또 행운일까요? 사도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했던 일들을 회고합니다. 그런 내용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잘 알려진 내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생명을 건 열정에서였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여러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방문하기로 작정하였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전달할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방해가 아니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상황을 충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고집스럽게 예루살렘행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참 바보스럽고 멍청한 일이 아닙니까? 뻔히 보이는 시련을 피하기는커녕 마주 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도의 설교는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주님을 섬기는 태도에 관해서(19절), 둘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했음을(20절), 셋째,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 선포한 복음은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었음을(21절), 넷째,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하는데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사명으로 감당하겠다는 점과(22-24절), 다섯째,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25절), 여섯째, 복음 전도자들을 피 흘리게 한 일들은 유대인들의 악행일 뿐이라는 점(26절, 행 18:6), 일곱째,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는 충고들(27-35절)이 그것들입니다. 물론 한 대목 한 대목을 길게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을 했을 것입니다. 설교 문을 작성하는 것과 실제 설교 현장의 말씀은 훨씬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설교자의 감정과 진정성이 나타난 실제 설교현장의 상황의 차이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