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4. 성령강림절후 스물셋째주일]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 / 히 5:1-10.
묵상자료 4189호.
시편 44:22-26.
찬송 50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편의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100명이 넘는 많은 스텝들이 함께 일을 하는데요. 그러니까 감독은 연출능력뿐 아니라,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잘 끌어가야 하는 능력도 갖춰야 하는 셈입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어느 감독에게, 스텝들을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고민 없이 한 마디로 답하시더라고요. 바로 착한사람. 그런데 오래전 세종대왕도 같은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했습니다. 첫째 마음이 착한지, 그리고 둘째 열정이 있는지를 보고, 일단 선발한 다음에는 끝까지 믿어 주었습니다. 그 시대에 많은 인재가 탄생한 건 우연이 아니었지요. 착한 마음과 능력이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입니다. 비록 더디고 실수가 있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완수하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그 착한 마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탁월한 능력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8월 27일 방송>
2.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순종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의 의지를 굽히고 상대에게 맡기는 태도야 말로 우리가 사는 시대정신과는 동떨어진 모양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순종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큰 힘과 위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순종의 대상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도 자신을 위해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1-4절).
제사장의 직무는 죄를 짓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주는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저지른 부정을 반드시 피의 대가를 지불함으로 씻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속죄제를 거행하는 제사장은 마치 의로운 사람처럼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어느 인간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속죄제를 드리지 않을 만한 의인이란 없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그들의 잘못을 선고하는 재판장이라고 할지라도, 그 역시 자신의 향해서 죄인 됨을 고발하고, 죄인의 자리에 서 있음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누가 있어서 나는 깨끗하고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서 태어나고 죄 가운데서 살고 있음을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의식으로 다른 연약한 이들을 이해하고 용납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 역시 그들의 자리에 함께 서 있다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훌륭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5-10절).
제사장의 모델은 멜기세덱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창 14:18), 멜기세덱이란 인물은 신적 권위를 가진 존재로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하다는 점과, 하나님의 임명에 의한 제사장이란 점에서 특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해서 간절한 눈물의 기도와 간구를 드릴 뿐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순종하는 모범을 보이셨다는 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생각할 때는 더욱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종과 겸비는 그 신분에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때문입니다. 마치 왕자의 신분으로 천민처럼 섬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구원 역사를 낯설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께서 행동하신 구원 역사는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십자가였습니다.
순종은 자신을 포기하는 믿음에 이르는 길입니다(요 3:14-15).
15세기 네덜란드의 수도사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 받아]라는 책을 썼는데 수도사들에게 한 권면이었는데,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사랑받는 유명한 책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이란 고난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이 없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한다면, 이는 모순입니다.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순종의 삶을 얘기한다는 것 또한 모순입니다. 어쩌면 겉과 속이 철저하게 다른 모순된 삶을 들어내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을 살려고 한다면, 자신의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순종하지 않는 한 믿음에 이를 수 없다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겉과 속이 다른 모순을 짊어지고 살아가든지, 아니면 주님이 앞장서서 본으로 보여주셨던 순종의 삶을 살아가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순종의 길은 주님의 도움으로만 가능한 길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