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12. 11. 18. 교회력 마지막 둘째주일] 종말의 징조들. / 막 13:24-31.

박성완 2019. 5. 14. 02:11

묵상자료 4203.

시편 49:6-10.

찬송 1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초보 등산객들이 자주 묻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더 가면 돼요?” 그럴 때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이렇지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십중팔구 거짓말입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그 지점은 도무지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인생이라는 산을 오를 때, 힘들어 지칠 때 그런 거짓말이라도 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힘이 날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금방 도착할 수 있어요.” 이 말이 정말 거짓말만은 아닌 까닭은요,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가면 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타협하고 말까 포기하고 말까 유혹이 든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목표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정말로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금방 도착할 수 있어요. 어쩌면 이 여름도 그렇겠지요. 조금만 더 견디면 금방 지나갈 겁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726일 방송>

 

2.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가끔씩은 종말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종말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종말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종말이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가오고 있는 종말은 어떤 것입니까?

 

종말은 구체적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3:1-2).

성경에는 종말에 대해서 세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곧 오고 있다는 <임박한 종말론>, 이미 왔다는 <실현된 종말론>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올 것이라는 <미래적 종말론>이 그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 이론은 개인마다 겪게 될 죽음과 함께 맞는 종말인 <임박한 종말><실현된 종말>이 있는가하면, 온 세상이 파국을 맞게 될 <미래적 종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종말은 다름 아닌 우리의 죽음과 직결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종말은 멀리 떨어진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진지하게 살펴야 할 구체적인 우리의 얘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그 시작과 끝을 도무지 알 수 없으니, 바로 지금부터 대비해야 할 과제가 아닙니까? 세례 요한이 외쳤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은 바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종말의 징조들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24-29).

성경은 종말의 징조들을 자연현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빛을 내지 못한다든지,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 등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상태를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마음은 캄캄한 절망감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모든 희망이 우수수 떨어지는 상태일 것입니다. 해와 달이 아무 힘을 써 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그토록 기대했던 희망이 별처럼 떨어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종말은 바로 그와 같은 날이 될 것입니다. 어떤 무엇도 붙잡을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암흑과 같은 순간 말입니다. 또한 무화과나무의 비유와도 닮을 것입니다. 봄에 싹이 나고, 여름에 열매를 맺는 과정처럼, 오기로 되어 있는 종말은 한 치도 변함없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런 징조들을 말씀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종말을 준비하라고 말입니다. 더 이상 종말은 타산지석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목전에 임하고 있다고.

 

종말은 새로운 희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30-31).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나, 종말을 강조하는 성경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절망과 슬픔을 일깨우려는 목적입니까?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 정반대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종말의 다른 한편에는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신 <인자>가 서 계신다고 말입니다그리고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약속하셨던 구원의 말씀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불신자들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그 날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희망과 기쁨의 날이 되고 있음을 눈 떠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종말의 현상들에 붙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저편에서 우리를 향해 두 팔 벌리고 맞아주시려는 주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이것이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시는 진정한 목적이며 의미인 것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없어지지 아니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 너를 위해 십자가에 죽었노라.”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우리가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할 주님의 말씀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