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묵상할 사항들. / 말 2:1-16.
묵상자료 4207호(2012. 11. 22. 목요일).
시편 50:1-6.
찬송 38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 파이프 해안가에서, 파일럿 고래 스물여섯 마리가 발견됐고, 이 중에서 16마리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충격을 주었는데요. 파일럿 고래의 정확한 명칭은 참거두 고래, 대서양에서만 서식하고요, 청어를 즐겨 먹기 때문에 어부들이 이 고래를 따라가면 청어를 잡을 수 있다 라고 해서 파일럿 고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파일럿 고래 떼의 죽음을 전하는 각 뉴스의 머리말이 좀 섬뜩합니다. 한결같이 파일럿 고래의 집단 자살이기 때문인데요. 과연 자살이라는 표현은 맞는 걸까요? 고래의 집단 자살과 관련한 뉴스는 예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특히 2004년 12월 28일에서 2008년 사이 호주와 뉴질랜드 해안에서 파일럿 고래와 돌고래 2,500마리가 죽은 채로 발견됐던 것이 가장 큰 규모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처럼 고래나 물개 바다 표범 같은 해양 동물이 스스로 해안가 육지로 올라와서, 옴짝달싹 하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에 이르는 현상을 외국인 언론에서는 집단자살이라고 하지 않고요, 좌초 스트랜딩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스트랜딩 현상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6,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북부 해안에 좌초된 고래들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는데요. 문제는 스트랜딩 현상이 최근 20, 30년 사이에 더 빈번해졌다는 거지요. 고래들은 왜 스스로 해안가에 올라와서 죽음을 맞는 걸까?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은 채, 다양한 추측과 가설이 나오고 있는데요. 질병에 대한 종족 보존을 위한 자기희생이다. 천적에게 쫓기다가 바닷가 까지 밀려왔다. 바다 오염과 먹이 고갈 때문이다 등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고래들의 초음파 기관들에 이상이 생겼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고래들은 고도로 발달된 청각 시스템에 의지해서, 먹이를 찾고 방향을 찾고 짝을 찾으면서 생존하지요. 그런데 최근 30여년 사이에, 바닷속의 소음이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바다에서 석유와 가스를 탐사하면서 사용하는 진동조사의 소음, 또 군함에서 발사하는 초음파가 주범인데요. 실제로 지난 2000년 바하마에서 하루사이에 고래 14마리가 죽었을 때, 그 해안가에서는 미 해군의 수중 음파 탐지기가 강력한 초음파를 발사하고 있었다지요. 군함이 내는 소음은 대략 235데시벨, 하지만 고래들은 110데시벨이 넘는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요, 180데시벨이 넘을 경우 극도의 고통과 공포에 휩싸인다고 합니다. 사람이 유발시키는 소음 때문에 청각장애가 되고,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채, 이리 저릴 떠돌다가 결국은 단체로 좌초되는 고래들. 물론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다고 하지만요, 고래들이 지구 자장을 이용해서 방향을 잡는 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다른 여러 가설을 보더라도, 자살은 아닌 것 같으니까요. 고래의 집단 자살이라는 표현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9월 10일 방송>
2. 어느 시대나 평범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남다른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럴만한 충분한 능력과 자질 뿐 아니라,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제가 좋아했던 같은 마을 학교며 교회 친구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어느 날 장래 얘기를 하면서, 목사가 되려고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목사는 싫다고 해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목사의 길은 의례히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의식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된지 40년이 가까워 오는데, 어느 새 남 못지않은 속물이 다 되어 버렸습니다. 능력도 자질도 그리고 희생정신도 모두 함량 미달인 부끄러운 지도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렇듯 모자란 지도자는 그래도 참아줄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넘치는 지도자들이 있어서 낭패중의 낭패가 되는 것 같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말라기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할 사람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문제는 지도자라는 사람들에게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바르게 가르쳐야 할 오늘의 목사들이, 빗나간 신앙생활을 가르치고 있으며, 바른 생활을 가르쳐야 할 사회 지도자들이 악한 생활을 앞장서서 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신앙인들 역시 품격이 떨어진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보다 낮고 가난함을 부끄러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엄히 말씀하십니다. “네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詭詐/간사하게 속임)를 행치 말지니라”고 말입니다. 거짓을 부끄러워해야 하겠습니다.
3. 묵상식구 오인근 목사님은 터키(옛 소아시아)로 순례길을 떠나신다고 합니다. 값진 여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 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