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말라기의 마지막 경고 : 회개냐? 저주냐? / 말 3:13-14:6.

박성완 2019. 5. 14. 02:18

묵상자료 4209(2012. 11. 24. 토요일).

시편 50:12-15.

찬송 33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계 이야기를 하니프리모 레비의 소설이 다시 떠오릅니다.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의 경험을 그린 소설 [지금 아니면 언제]의 첫 페이지에는, 한 종지기 노인이 등장합니다외진 시골 마을이라 시계가 없던 마을에서는, 종지기 노인이 종을 치는 것으로 시간을 알았지요그런데 시간에 맞춰 종을 치는 종지기 노인도, 시계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그런데도 늘 정확히 종을 쳤습니다.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판단해 줬기 때문입니다하지만 그렇게 치던 종도 종 줄이 끊어지면서 더는 칠 수가 없었습니다그러자 노인은 종 대신 허공에 엽총을 쏘아서 시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1시면 한발, 2시면 두발 하는 식으로 쏘아 올렸습니다그러면 정오에는 12발을 쏘아 올렸을까요? 처음에는 그렇게 했습니다하지만 한창 들에서 일하던 마을 주민들이 항의를 했지요. 전쟁이 다시 오는 줄 알았다고요그러면서 12시 따위는 알 필요가 없으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낮 1시에나 다시 쏘라고 항의했습니다. 종지기 노인은 그 때부터 12시는 건너뛰고, 1시부터 다시 시간에 맞춰 엽총을 쏘아 올렸습니다. 우리로써는 아무리 시끄러워도 12시를 건너 뛸 수는 없겠지요. 점심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일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문득 학창시절에 울리던 차임벨 소리도 생각이 납니다. 수업시간 전후로 울리던 그 소리야 말로지루한 수업의 끝을 알려주는 즐거운 소리이기도 했고요. 짝 사랑하던 선생님의 수업시간을 알리는 설레이는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그 소리들을 기억하면서 시계를 하나 그려놓고, 이번에는 학창시절 선생님과 친구들 이름을 차례로 써보고 싶어집니다. 여기에서 만큼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들이 제일 가깝게 다시 되찾아야할 가장 그리운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94일 방송>b.

 

2.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는 회개냐 저주냐를 마지막 예언의 주제로 선포합니다. 교회 안팎으로 문제의 핵심을 지적합니다. 한 때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는 주장으로, 교회 그 자체가 생명선으로 각인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생명선이라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대적하였다고 하면 무슨 말로 교회=생명선이 무게를 가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 정신을 따르지 않으면서도(13-14),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인양 주장하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일이냐는 것입니다. 아모스의 지적을 들지 않더라도(5:21-24),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살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하다면, 얼마나 빗나간 신앙생활이 될 것이냐는 것입니다. 길들여진 삶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결단과 노력이 없이는 회개란 말장난에 불과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신앙적인 삶이 정상적이지 못하면서도,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주일 성수의 정신은 적어도 한 주간에 한 시간만이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시키자는 선한 뜻인데도, 그것조차 소홀히 여긴다면 큰일입니다. 십일조 정신은 내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표현하는 것인데도, 그것조차 제 마음대로 전용한다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높아짐보다는 낮아짐을, 부요를 꿈꾸기 보다는 가난을 꿈꿔야 하는 구체적인 삶이 따를 때, 다시 한 번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희망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비춰질 것입니다.

 

3. 오늘 30년 살던 정든 집을 떠나 이사합니다. 30년을 함께 지냈던 거실창 앞 은행나무를 자를 때는 다리 하나를 떼어 내는 아픔마저 들었습니다. 오랜만의 이사여선지 많이 분주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