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도가 부끄러운 이유. / 엡 1:15-23.
묵상자료 4214호(2012. 11. 29. 목요일).
시편 51:10-13.
찬송 48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확실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지방 출장을 가느라 그냥 두었다가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그동안 아무런 전화도 없었습니다. 값이 상당한 가방을 실수로 두 개씩이나 보내다니, 그냥 모른 척 해버릴까? 하는 마음도 잠시 들었습니다. 워낙 자신의 마음에 드는 고가의 가방이어서였습니다. 하지만 해당 쇼핑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가방이 하나 더 왔으니, 되찾아가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쪽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너무나 고마워했습니다. 자신에게 몇 번이고 정말로 고맙다고, 좋은 일 하셨다고 거듭 되풀이 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는 끊겼습니다. 그런데 어딘지 좀 야박하게 느껴졌습니다. 결코 뭘 바라고 한 일이 아닌데도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이라면 안 그랬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고마움의 크기나 정도를 잘 가늠할 줄 모르는 곳이군!” 괜히 가방까지 싫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그런 자신에게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보내온 작지만 성의 있는 선물이 또 경비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좀 좋은 일 한번 하고는, 애써 생색을 내고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며 섭섭해 하다니, 매고 있던 가방을 들어, 잔뜩 무안해진 자기 자신을 얼른 가리고 싶어집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9월 18일 방송>b.
2. 지난 10여 년 동안 제게 큰 도움을 주시던 지인이 어려운 문제에서 풀려났다는 낭보를 들었습니다. 사실 그 일로 저 역시 많은 근심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의 지인을 힘들게 했던 분들은 다름 아닌 자칭 기독인들이라는 사람들이었기에 저의 기도가 막히기도 했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분들로써 어떻게 악한 사람들보다 더 악하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하는 생각에, 저를 포함한 교회 지도자들이 잘못 가르쳐도 한참 잘못 지도했다는 자괴감이 떠나질 않았었습니다. 그러면서 문제가 풀렸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지금 제가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 왔는가? 하는 물음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습니다. 본문에서 읽은 사도의 기도와는 너무 다른 저의 모습이 보여서 말입니다. 사도는 저의 기도와는 너무 다른 차원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중략>”. 저는 물질적 손해를 크게 입지 않기를, 사업이 잘 되어서 좋은 소식이 들리기를,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를 줄곧 기도해 왔었습니다. 너무 초라하고, 너무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붙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저의 교우들이 마음의 눈을 떠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 있는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되기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랑스러워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는 꿈에도 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기도뿐인 제게 여전히 기도를 부탁하는 이들이 있으니 고개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3. 좋은 이웃들 속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오른 팔 왼 팔처럼, 필요할 때마다 땀 흘려 도움을 주시는 교우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