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들의 특징. / 히 11:32-12:1.
묵상자료 4251호 (2013. 1. 5. 토요일).
시편 시 63:1-3.
찬송 35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광고사진을 많이 찍었던 사진작가 권용호씨는 한 글에다 썼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장의 작품 사진을 찍는 그가 자기 방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은 사진은 그 많은 작품 사진 중의 하나가 아닌,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아무 특별할 게 없는 너무나 평범한 사진이라고요. 그 사진은 프라하에서 촬영을 끝내고 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찍었다고 하지요. 당시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로 머리는 복잡했고, 수중엔 남은 잔돈이 없어서 생수 한 병 사 마실 수가 없었답니다. 머리는 아프고 목은 바짝 타들어갔지요. 그런데 낯선 한국 아주머니 한 분이 자신을 알아보고는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그러다 잠시 얘기를 나누다 말없이 생수를 한 병 사주고 갔지요.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생수를 자판기 옆에 놓고 사진을 찍었답니다. 그리고 돌아와 그 사진을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놨지요. 그러면 사진을 볼 때마다 프라하공항에서 그 아프던 머리와 타들어가던 목과 그걸 한 없이 따뜻하게 위로해 주던 낯선 이의 미소와 생수 한 병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현재의 피로와 갈증까지 깨끗이 씻겨 나간다고 했습니다. 평범한 한 장의 사진의 위력이란 그 한 장속의 모습이나 풍경을 통해서, 그날의 혹은 그 무렵의 크고 작은 생활과 감정까리를 모두 다 기억시켜 준다는 거겠지요. 그 기억으로 오늘의 나까지를 위로하고 정화시켜 준다는 것이겠지요. 사진은 단순한 한 장면이 아니라, 어떤 한 시간이나 인생의 단면을 통째로 켜켜이 옮겨놓은 종합입체도가 아닐까요? 형제 사진작가인 장현운 장현엽 두 사진가는 망쳤다고 생각되는 사진들이 오히려 예술사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흐릿하거나 뿌옇게 초점이 어긋나 버린 사진이며, 카메라나 필름에 문제가 있어서 담으려 한 사진의 일분분만 나온 사진들, 또 필름이 발해서 실제와는 전혀 다른 색감으로 나온 사진 등등. 그래서 일부러 유통기한이 지난 발한 필름을 구해서 사진을 찍을 때도 있다는데요. 여러분은 휴대폰으로 수시로 찍어둔 사진들 얼마나 되시나요? 그 사진들 중에 잘 찍거나 못 찍고 와 상관없이, 그 날의 상황이나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다시금 위로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사진 한 장 쯤 잘 골라내서, 인화를 해 보시는 것 어떨까요? 사진이 아닌 그 사진을 찍을 무렵에 겪거나 느꼈던 실패 좌절감 같은 것을, 오히려 마음 다짐에 훌륭한 자극제로 삼아도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KBS FM 출발과 함께. 2010. 12. 29 방송>
2. 믿음의 사람들을 살피는 일, 다시 말하면 그들이 말하는 믿음에서 공통점을 찾는 일은 매우 흥미 있는 일입니다. 사자 굴에 던져지거나, 희롱과 채찍질을 당하거나, 심지어 돌로 침을 받거나 톱으로 켜짐을 받는 것, 칼에 죽임을 당하는 모습 등, 그 숱한 시련을 당하면서도 그들이 한결같이 붙들었던 믿음은 분명히 같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자기 자신의 희망사항을 붙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희망사항을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행할 것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기쁘게 감당할 만큼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행동은 위대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중심에 있었고, 하나님이 하실 일들이야말로 가장 온전하고 정당한 가치를 가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는 믿음을 가진 부끄러운 우리들의 믿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 까닭이 너무도 명확히 대비되는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줄곧 시선을 떼지 않았던 것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임에 비해서,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이 가진 자신감과 능력을 의지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삶의 배후에 계셔서 힘과 위로, 꿈과 용기를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믿음을 밝히기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했던 것입니다. 행여 이 귀한 고백을 잊어버리고 헛소리를 지껄일까 봐서, 저는 십자가를 제 뒤에 세워두고 설교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예수와 십자가에 달리신 주를 말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쓸데없는 헛소리에 불과할 테니 말입니다.
3. 참 좋은 세상입니다. 미국에서, 베트남에서, 독일에서 그리고 몽골과 진천에서 실시간으로 생각을 나눌 수 있으니 말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