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왕의 신하가 보여준 믿음. / 요 4:46-54.

박성완 2019. 5. 16. 02:26

묵상자료 4254(2013. 1. 8. 화요일).

시편 시 64:1-4.

찬송 31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칼릴 지브란은 일에 대해 또 이렇게 계속합니다. “만약 그대들이 괴로운 나머지 태어남을 고난이라 부르고, 몸으로 살아가는 일이 이마에 적힌 저주라 부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만이 그곳에 적힌 저주를 씻어버릴 수 있다고.”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끝없이 일하고 노동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이고 위대한 일이라고 얘기합니다. 노동 없이는 모든 지식도 헛되다고 얘기합니다. 지브란의 아버지는 세무 관리 일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지요. 그 실수 때문에 모든 재산을 다 몰수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낯선 타국 땅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영주권을 받지 못해, 안정된 삶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지브란에게는 장차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될 [예언자] 등의 글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 훨씬 강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일에서의 치명적인 실수 하나가 한 가족의 삶을 얼마나 크게 파괴시키고 전락시켰는지,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내내 뼈아프게 느낀 셈입니다그러니 일에 대한 [예언자]의 가르침도, 일이 고난으로 여기는 저주를 씻어주는 위대함이며,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랑이 된 것이겠지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고마워하면서, 오늘 같은 날 월요병이며 일에서 오는 힘겨움을 잊어보려 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1015일 방송>b.

 

2. 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 한 복판을 찾아다니시는 주님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가나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한 왕의 신하(아마도 고급 관리)가 병들어 죽게 된 아들을 살려보려고 예수님을 수소문해서 찾아와 간청하는 이야기입니다. 병든 자식을 살려보려는 아비의 심정은 비슷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겠다는 마음 말입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이 한 마디 말에 모든 문제가 다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대꾸하십니다. 그러자 그 신하는 그 말씀을 믿고 돌아갔고, 가는 도중에 아들이 살아났다는 전갈을 듣게 되고, 낫게 된 시간을 물으니 바로 주님이 말씀하신 그 때인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온 집이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다시금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혹은 말씀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이해는 실존주의적 믿음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주님이 아무리 크고 위대한 일을 했다고 하더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실존이 믿거나 믿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 말입니다. 그래서 자칫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행위보다는, 그 구원행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인간 쪽에 더 무게를 두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이런 시각은 복음서를 역사적 사실적 기록 문서라는 데 무게를 두기 보다는, 실존주의 신학자들은 복음서를 초대교회의 신앙고백 문서로만 본다는 것입니다. 가령 갑이 내가 너를 사랑하다.”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을은 나는 네 사랑을 믿을 수 없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 아무리 갑의 사랑이 진실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을에 의해서 헛수고가 될 수 있다는 이해입니다. 그럴 때 제 3자인 우리는 갑에게냐 을에게냐로 양자택일의 문제처럼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갑의 역사적 사실적 약속이나 행위에 먼저 주목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을의 선택 혹은 실존적 이해를 가름해야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의존적 믿음이냐, 자발적 믿음이냐 또는 노예 의지냐, 자유 의지냐는 반드시 고민해야 할 대목이겠습니다.

 

3. 하노이 사역을 마친 묵상식구 이석윤장로님은 어제 호치민으로 옮기셨다고 합니다. 가는 곳마다 주님의 사랑에 눈뜨는 이들이 늘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 모두가 있는 곳마다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