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 영의 눈이 뜨기를. / 요 9:1-12.
묵상자료 4258호 (2013. 1. 12. 토요일).
시편 시 65:5-9.
찬송 48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국 문화협회가 세계 102개 비영어권 국가 4만 명을 대상으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로 선정된 단어는요, 내 인생 최초의 모든 것, 호호백발 노인이 되어도 가슴 저리게 그리운 존재를 가리키는 말, 바로 마더(mother)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언어가 다르다고 해도,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그 다음으로 2위는 패션(passion), 열정이었는데요. 열정 없이 삶을 즐겁게 산다는 사람, 본 적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되는데요. 91cm의 키로 세계적인 재즈피아니스트가 된, 미셀 페트로치아니도 이렇게 말했지요.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열정입니다.” 라고요. 이어서 3위는 스마일(smile) 미소, 그리고 4위는 러브(love) 사랑이었습니다. 글쎄요.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에서 중위권을 차지했다는 건 좀 의외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5위는 이터니티(eternity) 바로 영원입니다.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아름답게 느껴지는 단어일 수밖에 없지요. 어딘가에 영원히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진실을 믿을 때, 우리들의 삶은 결코 허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6위는 판타스티(fantasty) 바로 환상적입니다. 환상적이라는 말 그 자체로 얼마나 환상적인지. 그 반대말은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열 개도 넘게 들 수 있습니다. 진부하다, 지루하다, 무미건조하다, 비루하다, 지리멸렬하다, 그저 그렇다. 이런 재미없는 말들에 반기를 들고 우리가 환상적이라고 말할 때는, 무엇보다 쉽게 움직이지 않는 감정이 깨어날 때지요. 그리고 비영어권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 7위로 꼽은 단어 데스티니(destiny), 바로 운명입니다. 운명을 건다는 말, 너는 나의 운명 이라는 말, 나의 운명을 알고 싶다라는 말, 또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다 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운명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문장치고 절절하지 않은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8위는 프리덤(freedom), 9위 리버티(liberty) 바로 자유인데요. 자유라는 말이 이토록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 어떤 것에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만이, 그들 안에 있는 선한 정신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10위는 트랭큘리티(tranquility) 바로 평온이었습니다. 1위부터 10위까지 그저 입으로 불러봅니다. 어머니, 열정, 미소, 사랑, 영원, 환상적, 운명, 자유, 평온.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참 밝아지고 평화로워집니다. 우리는 때 묻지 않은 이토록 아름다운 말들, 하루에 몇 번이나 말하고 사는 걸까요. 하루에 단 한번이라도 말해 볼 수 있도록 그 감정을 느낄 수 잇도록 애써보고 싶네요. 어머니, 열정, 미소, 사랑, 영원, 환상적, 운명, 자유, 그리고 평온.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10월 15일 방송>
2. 목사가 되고 나서 가장 많은 유혹을 받았던 문제는 소위 신유은사를 획득하고픈 욕망이었습니다. 겉과는 달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 유혹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사 5년 차이던 어느 날 그런 꿈같은 소망이 현실이 되는 듯 했습니다. 저의 교회 기도실에 머물며 아침저녁으로 제게 안수기도를 받던 앉은뱅이 한 분이 일어나 걷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달려와 이를 본 교우들은 눈물을 흘리며 할렐루야! 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날 하루뿐이었습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입니다만, 그 분은 극도의 불안과 분노에 사로잡히면 굳었던 힘줄이 풀리고 일어나는 기적(?)이 가끔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신유은사에 대한 욕망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저 나름의 신유은사를 갈망했고 성취했다고 자부합니다. 비록 실로암에 가서 씻어낼 진흙을 이겨 감긴 육신의 눈에 발라주지는 않았을지라도, 진리에 눈을 뜨게 하는데 길잡이를 했다면 말입니다. 저는 저의 작은 묵상이 누군가에게 세상을 보는 눈이나 하나님을 앙모하는 눈이 뜨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신유은사는 없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제가 실로암 못에서 물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제 딴엔 마음의 눈을 뜨고자 실로암 못에서 마신 물이었는데, 조금 후에는 그 수로를 걸어나오며(왕하 20:20) 순례자들이 발을 씻은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를 종종 회상합니다. 육신의 눈을 뜨는 일 못지않게 마음의 눈, 영의 눈을 뜨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매일 매일 주님의 말씀에서 마음의 눈을 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기대합니다. “오늘도 영의 눈이 밝아지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