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해야 할 일. / 막 2:23-3:6.
묵상자료 4265호 (2013. 1. 19. 토요일).
시편 시 67:1-4.
찬송 5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심지어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하소연까지 할 정도인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는 일은 저마다 달라도, 어떤 일이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없고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 생각과 같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요, 직장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가족관계도 넓게는 인간관계니까요. 미국 콘엘대학의 칼 테레모 교수가 5년에 걸쳐서, 1천명이 넘는 70세 이상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결과를 담은 책,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요, 인간관계와 관련해서 <거울이 아닌 창밖을 보라> 라는 장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대해서 거울이 아닌 창밖을 보라라는 조언이라니. 어떤 뜻일까요? 72살의 짐 스콧은 오랫동안 학교 행정관으로 일했는데요. 현명한 인간관계에 대해서 이런 조언을 들려줍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누구를 어디에서 만나건 늘 그 사람들이 당신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들이 당신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아무 문제없이 지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고, 결국 문제를 일으키는 건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라고 지적을 합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거울과 창문을 비유로 들어 말했지요. “자신을 그만 들여다보세요. 자신을 들여다보는 건 거울 속 자신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저 당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당신만 보이지요. 창가로 가세요.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세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지만요, 자아에만 깊이 빠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거울만 보고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판단력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서 창밖을 보라고 합니다. 누구든 자신에게 지워진 짐을 지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한 길을 가는 동료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문제만 보는 건 참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이지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서 풍경을 보고, 또 남의 문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문제가 인간관계가 한결 수월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창밖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방안에 앉아서 거울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말만 합니다.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이야기만 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도 가끔 목격하고요. 타인에 대한 존중도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호의를 느끼기란, 글쎄요. 웬만해서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10월 29일 방송>
2. 마가복음서에는 안식일 논쟁 기사가 많습니다. 우리 주님의 짧은 공생애를 생각한다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거짓 신앙을 고쳐 주시려는 적극적인 자세로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은 매우 엄숙한 처신을 요구합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받았던 두 개의 돌판 중 첫 번째 내용이었습니다. 흔히 하나님을 향해 인간들이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우상숭배를 금하는 까닭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 그리고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내야 하는 까닭은 모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섬기는 내용들인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일이 없이 복된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거룩하게(구별되게) 지킨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유대인들이 소위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39가 보조 율법을 이행하는 것입니까? 그 39가지 중의 하나를 예로 든다면, 무화과 열매 하나의 무게를 들지 않는 것이 안식일을 바르게 지키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무 일 하지 않고 쉼을 가졌듯 온전히 쉬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안식일을 대했던 신앙의 선조들은 안식일을 어떻게 해석해 왔습니까? 다윗을 예로 들었습니다. 배가 무척 고팠던 다윗과 그의 일행은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었던 진설병을 안식일에 먹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가 적절한 것이었는지, 또 진설병과 제사장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생략하겠습니다만, 우리 주님의 초점은 안식일의 정신이란 참된 쉼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참된 쉼이란 주린 배를 채우기 전에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고, 병든 사람에게 참된 쉼이란 건강해지는 길 외에 없습니다. 웅덩이에 빠진 양이 죽어가는 것을 가만히 쳐다만 보는 주인이 과연 참된 쉼을 가질 수 있을까요? 지금도 남의 다리 긁듯 하는 바리새인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배고파본 경험이 없거나, 극심한 고통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일지 모르겠습니다. 율법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라고 생각할 때, 그 율법의 정신을 조금만이라도 묵상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고 해선 안 될지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3.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은혜 중에 여수 강습회를 마쳤습니다. 상처 입은 동역자들이 큰 위안과 힘을 얻었다고 간증하셨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