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27. 주현절 후 셋째주일] 예수님의 첫 설교 주제 : 복음. / 눅 4:14-21.
묵상자료 4273호.
시편 시 68:24-27.
찬송 2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옥수수 농사를 잘 짓는다고 소문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는 늘 이웃들에게 가장 좋은 옥수수 종자를 그냥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묻자, 농부는 모든 게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옥수수는 바람에 꽃가루가 날려서 수정되기 때문에, 이웃에서 키우는 옥수수가 좋아야만 자신의 밭에서도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거였지요. 내가 나눈 게 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다시 날아와서 결실을 이룬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도 잘 보이지 않을까 싶네요. 자, 올 가을에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건 무엇일지 한번 생각해 봅니다.
<KBS FM 1, 풍류마을, 2012년 10월 31일 방송>
2.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말씀은 우리 주님의 첫 설교 말씀입니다. 첫 번째 설교,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첫 설교 주제는 복음이었습니다. 그 복음을 마가복음서 기자는 가난한 자에게 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이란 무엇이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입니까?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첫 설교의 주제가 복음이라는 점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성경에 소개된 예수님의 행적에서 우리는 자칫 오해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기적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세상에 가득 찬 가난의 문제나,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처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화육하신 목적은, 복음을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복음이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인 은총을 선포하는 일이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실존에 눈뜨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시는지를(요 3:16), 그리고 죄와 죽음의 공포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하는 것이(마 9:12-13) 바로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역사의 한 복판에 하나님이 계셔서, 당신의 거룩한 뜻대로 구원의 섭리를 펴고 계신다고 분명히 선포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담대히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잘 들려지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이란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차원에서 말하곤 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상징적인 가난도 포함됩니다. 무엇인가 채워 넣어야 할 텅 빈 마음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사랑에 주린 사람도, 진리에 허기진 사람도, 자유에 목마른 사람들과 죄와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싶은 사람들도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가난과 질병, 그리고 무지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복음이 잘 들릴 수 있습니다. 1910-1960년대의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6.25동란으로 잿더미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때, 미국에서 온 전도자들이 복음을 온 몸으로 전해 주었습니다. 곳곳에 병원을 지어 치료해 주었고, 학교를 지어 젊은이들의 눈을 띄웠으며, 고아원을 지어 천애 고아들을 길러주었습니다. 그래서 김구, 안창호, 이승만, 김규식, 이시응선생 같은 우국지사들이 기독교인이 되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희망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970년대를 정점으로 한국 기독교회는 양적인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교파들마다 세계 제1의 교회들이 한국에 세워지는 진기록을 수립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세계 제2의 선교사 파송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대단한 명성을 가진 한국교회가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아프리카 빈민들이나 북한 동포 살리기 지원 등에 엄청난 공헌을 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복음이 들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일 큰 교회당은 만들었지만, 복음이 들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 대신 인간의 공로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뿐입니다. 중세 기독교회가 걸어갔던 바로 그 길을, 한국의 개신교회가 따르고 있습니다. 물질과 권세에 눈먼 지도자들, 오만하고 독선적인 기독자들의 신앙 태도, 성공과 출세가 신앙의 목표가 된 배경에 인간의 공로주의가 자리잡은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복음, 안디옥 교인들처럼 주님만 앞세워야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