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곁에 계신 주님을 몰라보고 있다면. / 막 6:1-13.

박성완 2019. 5. 16. 02:57

묵상자료 4275(2013. 1. 29. 화요일).

시편 시 68:33-35.

찬송 41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동화작가였던 마이런 얼 버그는, 자신의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가득한 책을 썼습니다. 그 책 [아버지의 손] 서문에서, 그는 제일 먼저 부모님의 청각장애부터 밝혔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청각장애인이었다. 두 분은 의사소통을 위해 말 대신 손을 사용해야 했다.” 그러니 얼 버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다른 사람의 통역을 맡아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받는 모욕을 어린 그가 대신 느끼고 알게 될 때도 많았지요. 가령 한번은 아버지와 함께 정육점에 갔을 때입니다. 긴 줄에서 오래 기다린 끝에 마침내 그들 차례가 됐습니다. 그런데 정육점 주인은 아버지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자, 모욕을 주며 줄 끝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어린 얼 버그는 증간에서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아버지는 이미 다 눈치를 챘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난채 정육점을 나왔지요. 하지만 나와서 그는 어린 아들에게 말합니다. “네게 이런 일을 겪게 해서 정말 마음이 아프다. 너는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한데 말이다. 하지만 네가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말에 어린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합니다. “안 미워해요. 안 미워해요.” 하지만 얼 버그의 책에서 가장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동적인 장면은, 아버지가 퇴근해 돌아 왔을 때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들은 가족을 부양하느라 일을 하고, 일이 끝난 귀가 시간에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옆구리에 신문을 한 부씩 끼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리곤 돌아와서 현관문에서, 아내로부터 아이들이 저지른 말썽 얘기를 듣고는, 신문으로 아이들 머리를 한 대쯤 때리거나, 그 보다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118일 방송>a.

 

2. 예수님의 생애 중 유독 고향인 나사렛에서는 존경은 고사하고 배척을 당하셨다는 오늘의 말씀이 조금은 낯설게 합니다. 경험적인 이야기이겠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고향에서 칭찬을 듣기란 힘든 것 같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긴 합니다만. 유명세를 얻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제가 고향 교회에 초대를 받아 몇 차례 강의도 하고 설교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척들의 참석율이 아주 낮았습니다. 화도 나고 마음도 아팠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그 가족들에게 도움을 드리며 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시간을 내서 찾아뵙는 수고조차 할 수 없었으니 그럴 만 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그럴지 모릅니다. 30년이나 함께 지냈던 마을 친구들마저 등을 돌리고 배척한 데에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인이 되어 나타났는데, 그들 눈에는 거만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비쳐졌을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모습, 아무리 변명을 한들 소통이 안 되는 대목입니다. 예수님과 나사렛 사람들의 관계는 등잔 밑이 어둡다 에 해당되는 경우일지 모르겠습니다. <큰 바위 얼굴>에서 라쉬모나 산자락 동네 사람들이 몰라봤던 어니스트처럼 말입니다. 너무 가깝다는 것이 사실은 너무 멀게만 보이게 만드는 법이니까요.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하는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너무 가까이 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그리고 자매의 고단한 허리에 주님의 눈길이 머무는 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듯 말입니다. 과연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만나기는커녕, 느낌조차 없으니 말입니다. 왜 힘든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주님의 마음과 그 인자한 눈길을 가까이서 느끼는 때문은 아닐런지요.

 

3. 바닷가에 숙소를 정해주셔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