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의 해답. / 막 7:24-37.
묵상자료 4281호 (2013. 2. 4. 월요일).
시편 시 69:20-25.
찬송 20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만날 때마다 이다음에 크면,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시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처음에는 “어, 벌써 다 컸는데요.” 이렇게 대답했더니 꿀밤을 때리셨지요. 다음번 만남에서는 또 다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으셔서, “그냥 그러게요.” 말끝을 흐리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될지. 될 수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어르신의 물음은 사자후처럼 남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마치 결과물처럼 바라보는 세상에서, 여전히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진행형으로 봐 주시는 그 시선이 따뜻했고, 또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 질문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이 시간을 허투로 보내지 말라는 뜻임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나로 결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결정할 시간을 살아가는 겁니다. 오정희 작가의 첫 번째 장편 소설, 새 주인공은 순수한 영혼을 지닌 12살 소녀입니다. 작가는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과 보호 존중으로부터 내쳐진 소녀를 통해서, 불우한 상처와 그 기억이 한 영혼을 어떻게 병들어가게 하는지, 담박한 문장 속에 잔잔히 녹여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새 엄마라면서 데리고 들어온 젊은 여자가, 마루에 앉아 감자 눈을 하다가 이런 말을 하지요. “우리는 모두 매일 매일 무엇인가 되어가는 중이지. 너는 지금의 내가 되기 전의 나야. 아니면 내가 되어가는 중인 너라고 말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보는 게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 어떠한 것들이 우리 모두를 매일매일 무엇인가로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서 한번 생긴 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해 준 것은 연숙 아줌마이다. 아주 먼 옛날의 별 빛을 이 세상 우리가 보는 것처럼. 뭐든 있었던 것 지나간 자취는, 아주 훗날에라도 아름다운 결과 무늬로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부드럽고 둥글게 닳아지는 돌들, 지난 해의 나뭇잎, 그 위에 애벌레가 기어간 희미한 자국, 꽃 지는 나무.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그 외로움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바람은 나무에 사무치고, 노래는 마음에 사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뭐든 있었던 것 지난 간 자취는, 아주 훗날에라도 아름다운 결과 무늬로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하네요. 시간의 흐름에 밀려서 닳아지고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만 같아도, 그런 것들이 나라는 사람의 결과, 또 무늬를 만들어갑니다. 인생은 그렇게 매일 매 시간을 살아가는 연속이며, 그렇게 우리는 모두 매일 매일 무언가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당신은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11월 19일 방송>
2. 귀신들린 어린 딸을 고쳐주신 일화와(24-30절), 귀머거리를 고쳐주신 일화를(31-36절)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기적을 수행하시고도 우리 주님은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더욱 더 소문은 퍼져나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거니시던 이스라엘 변방 갈릴리 주변은 물론, 온 세상에는 병들고 허기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천년이 지나간 지금도 이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육신의 질병과 함께 마음의 병든 사람들로 더욱 더 고통과 아픔은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세상을 위해서 주님이 하셨고 하실 수 있는 것은 아주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치유 기적 이야기는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지금 주님은 우리가 짊어진 온갖 종류의 질병들을 주목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질병들은 하나같이 커다란 원인균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죄악이라는 병원균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셨고, 하실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병원균을 죽이는 능력이라고 말입니다. 주님이 질병을 처리하는 방법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질병 자체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모든 질병을 관통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 그것이 죄악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언제나 “네 죄를 사함을 받았노라.”(마 9:5)고 되풀이 하십니다. 죄에서 자유함, 이것이 모든 문제들의 해답이었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