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 막 8:1-10.
묵상자료 4282호 (2013. 2. 5. 화요일).
시편 시 69:26-29.
찬송 1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현재 시각으로 지난 7일 재선에 승리한 미국 버럭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화제입니다. 연설문 중에서도 단연 귀를 붙잡은 구절이 있었지요. “The best is yet to be.”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신선한 듯 어딘지 귀에 익었습니다. 그런데 똑 같은 말을 빨간 머리 앤도 했었지요. 대학생이 된 앤이 친구들과 함께 살 하숙집을 찾는데, 좀처럼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프레실라가 불평하자, 앤이 말하지요. “최고의 순간은 아직도 남아 있어. 진짜는 이제부터라고.” 우리말로는 오버마의 연설문과 앤의 말이 다르게 번역됐지만요, 원문은 같습니다. 그렇다고 버럭 오버마 대통령이 루시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에서 그 구절을 인용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말은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1864년에 발표한 시 <랍비 밴 에스라>에 처음 썼기 때문입니다. 자, 오늘 이 멎진 시 전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근처 산에서는 꽃향기가 난다는 한 시인의 말처럼/ 당신이 손을 잡아준 그 순간/ 어쩐지 켜켜이 구부정한 주름 틈에도 배꽃 향내 흥건하다/ 마주보는 것이든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든/ 농익은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그대로 축복이요 기적인 까닭에/ 곰삭은 세월 속에 비밀스레 발효한 우리네 마음결은/ 어느 새 생의 너덜한 끄트머리를 능숙하게 기워줄지 모를 일/ 또 혹간 그렇지 못한들 어떠하랴/ 우리 생에 낡고 누추한 실밥 한 가닥/ 그저 쓱싹 비벼 어느 결에 찔러 넣어줄/ 난삽한 그대로 반겨줄 누군가 함께 하는 여정이라면/ 그것은 언제나 어느 순간에도 수고롭지 아니할 것이다/ 하여 내 인생 최고의 순간/ 내 인생 최고의 마침표/ 아니 말 줄임표를 당신과 내가/ 이렇듯 사이좋게 나누어 찍을 수 있다면/ 그 때 주저 없이 덮어도 좋으리라/ 나비의 그것을 닮은 이 행복한 마지막 장을/ 그러니 나와 함께 늙어갑시다/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지금까지의 삶이 구부정한 주름 같고 또 낡고 누추한 실밥 같았을 지라도, 그대로 반겨줄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최고의 순간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 이제부터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11월 12일 방송>
2. 배고픈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들은 뉴욕 거리에도, 파리에도, 서울에도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에도 그런 이들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풍요 속에서도 이런 배고픈 사람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물론 육신의 배를 채울 음식이 필요하다는 그런 배고픔의 얘기도 되겠지만, 정신적인 배고픔을 느끼는 이들과 영적인 배고픔을 느끼는 이들을 합친다면 어쩌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들이 이미 사흘이나 먹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그대로 돌려보낸다면, 길에서 쓰러질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계신 세상에서도 이런 힘든 문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문제 앞에서, 문제 풀이를 제자들에게 떠맡기려 하십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하고 말입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들이 가진 것들에 대해서 눈을 뜨라고 하십니다. 떡을 가지고 있다거나 작은 생선을 가지고 있는 것을 주목하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배고픈 사람들의 절망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눈을 뜨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텅 빈 가슴들을 채워야 할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목하게 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가진 것들이 보잘 것 없어 보이고,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움켜쥔 손을 풀기만 한다면, 따뜻한 마음을 품기만 한다면,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지금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마땅히 돌봐야 하는데, 그것은 정부나 부자들이 할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너희는 사랑으로 충만 하느냐?” 고 말입니다.
3. 서울 지역은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눈길에 조심해서 다니시길 빕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