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완성하신 구원행동. / 롬 5:1-11.
묵상자료 4311호 (2013. 3. 6. 수요일).
시편 시 76:1-3.
찬송 25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피터 한트켄은 한 사람의 일생을 한 줄로 요약했습니다. “피곤하고 기진하고 병들고 죽어가고 죽고.” 이것이 일생이라면 참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든 죽음의 원인은 피곤하다가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이 병드는 것도 마음이 병드는 것도, 내 몸이 내 마음이 피곤해서 기진해서 일수도 있겠다 라고요.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어디론가 가는 것만은 분명하고, 목과 등에 사나운 짐승이 매달린 것처럼 늘 무겁고 힘에 부치지만, 이제는 내 일부려니 체념한 상태. 그렇습니다. 체념한 상태. 아마도 이것이 피곤하고 기진하고 이겠지요. 그러나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이 정도 피곤하고 기진한 것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착각 아닐까요? 가끔 생각합니다. 나를 피곤하고 기진하게 하는 희망이라면, 그건 희망이 아니라 욕심일지 모른다고요. 정말로 희망이라면 피곤해도 피곤한 줄을 몰라서, 사람을 기진하게 만들지는 않을 텐데 하고 말이지요. 희망과 욕심 사이, 나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1월 17일 방송>
2. 오랫동안 흉물스럽게 부서진 채로 방치돼 있던 집을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사는 마을이 체면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다가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서야 마을 공동체가 즐거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은 사람 편으로부터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순전히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일이었습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명쾌하게 진술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하시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우리가 짊어질 죄의 멍에를 대신 짊어져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쁜 소식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죄의 형벌을 받는 것뿐이었고, 죽음을 향해 뚜벅 뚜벅 걸어가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들을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서 죄의 멍에를 다 치워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입니까? 이 큰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일이고 감사하는 일 뿐입니다. 또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을 갖는 일 역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며, 의롭게 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니까 말입니다(엡 2:8).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